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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퇴니손

Jaan Tõnisson
에스토니아 인민당 민족주의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68–1941? 실종 · 사망 추정

타르투 강화를 체결한 에스토니아 총리, 「포스티메스」의 발행인

1940년 6월 소련의 점령이 닥치자 그는 페츠 대통령에게 상징적으로라도 무장 저항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포스티메스」를 이끈 에스토니아 자유주의 민족운동의 대표로 1919~1920년 총리를 지내며 타르투 강화를 체결했다. 1934년 페츠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해 밀려났고 1940년 소련 점령 뒤 체포되어 실종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6「포스티메스」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민족운동의 기관지로 키움
  • 1906러시아 제1두마 의원, 비보르크 호소 서명
  • 1917에스토니아 임시지방의회(마패브) 의원
  • 1919–1920총리로 타르투 강화 조약 체결
  • 1923–1925리가코구 의장
  • 1927–1928국가원로
  • 1931–1932외무장관
  • 1933국가원로(마지막 정부)

위리 울루오츠

Jüri Uluots
에스토니아 국가기관 민족주의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90–1945 ○ 망명지 스웨덴에서 병사

소련 점령 뒤 대통령 직무를 맡은 에스토니아의 마지막 헌법상 총리, 1944년 티에프 정부를 세운 법학자

에스토니아현 키르블라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944년까지 타르투 대학에서 로마법과 에스토니아법을 가르쳤다. 『포스티메스』 편집장과 하원의장을 거쳐 1939년부터 1940년 6월 소련군이 들어올 때까지 총리였고, 콘스탄틴 페츠 대통령이 소련에 체포되자 헌법에 따라 대통령 직무를 맡은 총리가 되었다. 1941년 7월 29일 독일군에 독립 정부 수립을 청했다가 거절당했고, 자치행정 수장 제안은 거부했다. 1944년 2월 7일 라디오로 징집에 응하라고 호소했고 3만 8,000명이 등록했다. 6월 오토 티에프를 부총리로 임명했고, 9월 독일군이 물러나자 티에프 정부를 세웠다. 그 뒤 스웨덴으로 건너갔고 1945년 1월 위암으로 숨졌다.

상세 이력 보기
  • 1938–1939하원의장
  • 1939–1940에스토니아 총리
  • 1940–1945대통령 직무를 맡은 총리
  • 1944징집 호소, 티에프 정부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