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연방 총리를 두 차례 지내고 1919년 4월 협상국 사절로 부다페스트에 간 군인 정치가
영국령 케이프 식민지의 아프리카너 집안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제2차 보어 전쟁에서 코만도 부대 장교로 싸웠고, 1902년 페레니힝 조약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 창설을 이끌었고, 국방장관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연방 방위군을 책임졌으며 1917년 영국 제국전시내각에 들어갔다.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국제연맹 창설을 주도했고, 4월 4일 부다페스트에 가서 쿤 벨러 정부에 빅스 각서보다 유리한 중립지대와 봉쇄 해제를 제시했으나 쿤이 거부하자 협상을 끝냈다. 1919~1924년과 1939~1948년 남아프리카 연방 총리를 지냈고 1941년 원수가 되었다. 1950년 심장마비로 죽었다.
1944년 바르샤바 공수작전을 앞두고 그는 군사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없고 손실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작전은 계속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장교 제임스 톰 듀랜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프리카와 지중해 전선의 폭격·정찰 부대를 지휘한 조종사였다. 그는 1944년 이탈리아의 영국 공군 제205그룹을 맡아 바르샤바 봉기 지원 공수작전을 지휘했으며, 전투적 필요와 정치적 의무가 충돌하는 임무의 한계를 드러냈다. 전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최고 책임자로 복무했지만, 국민당 정부의 탈영국화 정책과 국방장관과의 갈등 속에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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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1934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상비군 사관후보생 과정을 수료하고 조종사 자격을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