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다이를 몰아내고 남베트남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가 1963년 쿠데타 때 살해된 정치가
1955년 바오다이를 축출하고 남베트남 대통령이 된 응오딘지엠은 가족을 정권 요직에 기용하고 반대파를 투옥·처형했다. 1963년 불교도 시위가 확산하자 미국은 지원을 거두었고, 군부 쿠데타로 살해되었다.
후에의 가톨릭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식민지 관리를 지낸 반공 민족주의자였다. 1954년 6월 제네바 회의 도중 바오다이가 베트남국 총리로 임명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1955년 국민투표로 바오다이를 몰아내고 남베트남(베트남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제네바 협정이 약속한 1956년 통일 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가족 중심의 권위주의 통치와 불교도 탄압으로 반발을 샀고, 1963년 미국 중앙정보국이 지지한 쿠데타 때 붙잡혀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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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바오다이 황제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냈으나 프랑스가 개혁을 거부하자 사임했다.
- 1954–1955바오다이의 요청으로 베트남국 총리를 지냈다.
- 1955–1963정부가 통제한 국민투표에서 바오다이를 축출한 뒤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대통령으로 통치했다. 1956년 전국 자유선거를 규정한 제네바 협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 1945년 퇴위했다가 프랑스가 내세운 베트남국의 국가원수가 된 인물
1945년 8월 퇴위한 바오다이는 1949년 베트남국 국가원수로 복귀했지만, 1955년 응오딘지엠 정부의 국민투표로 축출됐다.
응우옌 왕조의 13대이자 마지막 황제로 1926년 즉위해 프랑스 보호령 안남·통킹의 명목상 군주였다. 1945년 3월 일본이 프랑스 행정을 무너뜨리자 일본 아래 베트남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1945년 8월 혁명 뒤 30일 후에에서 퇴위해 호찌민 정부의 「최고 고문」이 되었다. 곧 망명했다가 1949년 엘리제 협정으로 프랑스가 내세운 베트남국의 국가원수가 되었으나, 프랑스와 너무 가깝고 나라 밖에서 지내는 일이 많다는 비판을 받았다. 1955년 국민투표로 응오딘지엠에게 쫓겨났고 1997년 파리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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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응우옌 왕조 황제로 즉위했으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안남·통킹 보호령을 다스린 명목상 군주였다.
- 1945일본이 비시 프랑스 행정을 축출하고 베트남 제국을 선포하자 황제로 남았으며, 일본 항복 뒤 8월 퇴위했다.
- 1945–1946퇴위 후 베트남민주공화국 정부의 최고 고문을 지냈다.
- 1949–1955프랑스가 지원한 베트남국의 국가원수를 맡았고, 1955년 응오딘지엠 총리가 주도한 국민투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1963년 쿠데타를 이끌고 1975년 남베트남의 항복을 명령한 장군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 때 항복을 명령해 남베트남 전쟁을 끝냈다.
즈엉반민은 베트남공화국군 장군으로 응오딘지엠 정권에서 활동했다. 1963년 군사쿠데타를 이끌어 지엠을 축출하고 군사정권을 이끌었으나 1964년 응우옌카인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1975년 4월 대통령에 취임한 뒤 4월 30일 사이공 함락 때 북베트남군에 항복을 명령했다. 이후 프랑스로 이주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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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프랑스 식민지군에서 군 경력을 시작했다.
- 1952베트남국군으로 옮겼다.
- 1955사이공 전투에서 빈쑤옌 세력을 격파하고, 호아하오 사병 조직을 진압했다.
- 1963쿠데타를 이끌어 응오딘지엠을 축출했으며, 지엠과 동생 응오딘누가 군에 붙잡힌 뒤 살해됐다.
- 1963–1964군사정권의 수장으로 약 석 달 집권했다가 응우옌카인의 쿠데타로 실권했다.
- 19754월 28일 대통령에 취임했고, 4월 30일 북베트남군에 항복을 명령했다.
- 1983프랑스로 이주할 수 있게 됐다.
1967~1975년 남베트남 대통령으로 파리 협정에 반대하고 사이공 함락 직전 사임한 장군
1965년 남베트남 군사정권을 이끈 응우옌반티에우는 1967년 대통령이 되어 1975년까지 재임했다. 1975년 4월 21일 사임하며 미국이 남베트남을 배신했다고 비난하고 국외로 떠났다.
판랑 출신으로 1945년 베트민에 들어갔다가 한 해 만에 나와 베트남국 군대에 들어갔다. 1963년 11월 지엠을 무너뜨린 쿠데타에 가담해 장군이 되었고, 1965년 군사정부의 명목상 국가원수가 되었다. 1967년 부정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71년에는 경쟁자가 모두 빠진 단독 출마로 재선되었다. 1973년 파리 협정에 반대했으나 서명했다. 1975년 4월 21일 미국이 남베트남을 배신했다고 선언하며 사임해 타이완으로 떠났고, 뒤에 미국 보스턴 근교에서 살다 2001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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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남베트남 군사정권을 이끌다
- 1967대통령에 취임하다
- 1971경쟁 후보들이 모두 물러난 선거에서 재선되다
- 1973파리 평화협정에 반대했으나 서명하다
- 19754월 21일 사임하고 남베트남을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