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르나에서 태어난 오스만 장교로, 독립전쟁에서 대국민의회군 참모총장과 서부전선 사령관으로 1·2차 이뇌뉘 전투를 이겼다. 1922~1923년 로잔 회의의 튀르키예 수석 협상자로 커즌에 맞서며 세브르 조약을 로잔 조약으로 대체했다. 아타튀르크 아래 오래 총리를 지내며 세속화 개혁을 집행했고, 셰이크 사이드 반란 뒤 쿠르드인의 튀르크화를 밀어붙였으며 데르심 학살의 책임자로도 꼽힌다. 1938년 2대 대통령이 되어 「국가 지도자」 칭호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무장 중립을 지켰다. 1950년 선거 패배로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겼다. 1973년 죽었다.
1889년 얄타 군 키질타슈의 부유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나 이스탄불 대학 법학부에서 노만 첼레비지한을 만났다. 1911년 『20세기의 억압받는 크림 타타르 민족』을 펴낸 뒤 체포를 피해 파리에서 공부했고, 1914년 돌아와 사관 학교를 거쳐 소위가 되었다. 1917년 「밀레트」를 잠시 편집했고, 쿠룰타이가 세운 디렉토리에서 군사·외무 국장이 되었다. 1918년 1월 볼셰비키에게 밀려 키이우로 피했고, 독일군 점령 뒤 술키에비치의 크림 지역 정부 외무장관으로 베를린에서 독립 승인을 구했다. 독일군 철수 뒤 이스탄불로 가 신문 「에멜」을 만들고 프로메테우스 운동을 지지했다. 1934년 성 「크르메르」를 얻었고 1960년 이스탄불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