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이스메트 이뇌뉘

İsmet İnönü
튀르키예 국가기관 민족주의 튀르키예 1884–1973 ○ 자연사

로잔 조약을 협상하고 아타튀르크 뒤 튀르키예 2대 대통령이 된 군인·정치가

스미르나에서 태어난 오스만 장교로, 독립전쟁에서 대국민의회군 참모총장과 서부전선 사령관으로 1·2차 이뇌뉘 전투를 이겼다. 1922~1923년 로잔 회의의 튀르키예 수석 협상자로 커즌에 맞서며 세브르 조약을 로잔 조약으로 대체했다. 아타튀르크 아래 오래 총리를 지내며 세속화 개혁을 집행했고, 셰이크 사이드 반란 뒤 쿠르드인의 튀르크화를 밀어붙였으며 데르심 학살의 책임자로도 꼽힌다. 1938년 2대 대통령이 되어 「국가 지도자」 칭호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무장 중립을 지켰다. 1950년 선거 패배로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겼다. 1973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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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1·2차 이뇌뉘 전투
  • 1922–1923로잔 회의 튀르키예 수석 협상자
  • 1923–1937총리(두 차례)
  • 1938–1950튀르키예 대통령
  • 1961–1965총리
민족주의 러시아 제국 → 튀르키예 1889–1960 → 망명지에서 사망

크림 인민공화국의 군사·외무를 맡고 망명지에서 크림 타타르 민족운동을 이끈 정치가

1889년 얄타 군 키질타슈의 부유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나 이스탄불 대학 법학부에서 노만 첼레비지한을 만났다. 1911년 『20세기의 억압받는 크림 타타르 민족』을 펴낸 뒤 체포를 피해 파리에서 공부했고, 1914년 돌아와 사관 학교를 거쳐 소위가 되었다. 1917년 「밀레트」를 잠시 편집했고, 쿠룰타이가 세운 디렉토리에서 군사·외무 국장이 되었다. 1918년 1월 볼셰비키에게 밀려 키이우로 피했고, 독일군 점령 뒤 술키에비치의 크림 지역 정부 외무장관으로 베를린에서 독립 승인을 구했다. 독일군 철수 뒤 이스탄불로 가 신문 「에멜」을 만들고 프로메테우스 운동을 지지했다. 1934년 성 「크르메르」를 얻었고 1960년 이스탄불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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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1『20세기의 억압받는 크림 타타르 민족』 출간
  • 1914사관 학교 졸업, 소위로 임관
  • 1917–1918크림 인민공화국 디렉토리 군사·외무 국장
  • 1918크림 지역 정부 외무장관
  • 1918–1960이스탄불·유럽에서 크림 타타르 망명 운동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