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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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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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스테판 반데라

Степан Андрійович Бандера
민족주의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1909–1959 ✕ 독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치가이자 OUN-B 지도자다.

반데라는 폴란드령 동부 갈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하조직 활동을 이끌었다. OUN 지도부였던 그는 1934년 폴란드 내무장관 브로니스와프 피에라츠키 암살을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1940년 OUN이 분열하자 급진파 OUN-B를 이끌었고,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직후 리비우에서 선포한 우크라이나 국가가 나치 독일과 협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독일 당국은 그를 구금하고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보냈으며, 전후 서독에서 OUN-B 망명 조직을 이끌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9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에 가입했다.
  • 1931OUN 선전 책임자가 되었다.
  • 1933OUN의 폴란드 국내 지도부를 이끌었다.
  • 1934폴란드 내무장관 암살을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 1940OUN이 분열한 뒤 OUN-B 파벌의 지도자가 되었다.
  • 1941–1944독일 당국에 체포되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 1945OUN 해외 조직을 이끌었다.
  • 1959뮌헨에서 KGB 요원 보단 스타신스키에게 독살당했다.

비톨트 파블로비치 포킨

Вітольд Павлович Фокін

소련 경제관료에서 독립 우크라이나의 첫 총리로

소련 해체 협정에 서명했던 포킨은 2016년 인터뷰에서 '남자로서 부끄럽지만 크림반도가 병합됐을 때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고 고백했다.

비톨트 포킨은 광산 기술자 출신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경제관료로, 계획경제의 운영과 국가 전환을 함께 경험했다. 그는 독립 직전과 직후 우크라이나 정부를 이끌며 경제 위기와 연방 해체의 압력을 조정해야 했다. 1991년 12월 레오니드 크라프추크와 함께 우크라이나 대표로 벨로베시 협정에 서명해 소련 이후 질서의 출범에 참여했다. 말년에는 돈바스 협상에서 논쟁적인 입장을 보여 공적 역할에서 물러났다.

상세 이력 보기
  • 1954–1963루한스크 지역 탄광 기술자·관리자
  • 1963–1971돈바스 무연탄 산업 관리자
  • 1971–1987우크라이나 국가계획위원회 부서장·부위원장
  • 1987–1990우크라이나 각료회의 부의장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 1990–1991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각료회의 의장
  • 1991–1992우크라이나 초대 총리
  • 1991벨로베시 협정 우크라이나 서명자
  • 2020우크라이나 삼자접촉그룹 대표단 제1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