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에마 골드만

Эмма Гольдман
아나키스트 미국 러시아 1869–1940 ○ 사망

아나키즘을 국제적 정치운동으로 만든 망명 혁명가

크론시타트 봉기 진압을 목격한 뒤 골드만은 이렇게 썼다. '크론시타트는 나를 볼셰비키에 묶어둔 마지막 실을 끊어놓았다' — 그녀는 1921년 12월 소비에트 러시아를 떠났다.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작가, 연설가. 헤이마켓 사건을 계기로 정치에 눈떠 북미와 유럽에서 아나키즘 정치철학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피임·자유연애·반군국주의를 주제로 수천 명을 끌어모은 연설로 '붉은 에마'라 불렸으며, 1919년 소비에트 러시아로 추방되었다. 크론시타트 반란 진압 이후 볼셰비키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전향적인 목소리를 냈고, 《러시아에서의 환멸》(1923)에 그 경험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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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9뉴욕으로 이주, 요한 모스트의 지도 아래 아나키스트 활동 시작
  • 1892버크먼의 프릭 암살 미수 사건 연루, 체포·심문
  • 1893첫 수감 — 유니언스퀘어 연설로 폭동선동죄 1년형
  • 1906아나키스트 잡지 『마더 어스』 창간
  • 1917징병 반대 조직으로 2년 수감
  • 1919소비에트 러시아로 강제 추방 — '소비에트 방주' 편
  • 1923《러시아에서의 환멸》 출간, 볼셰비키 비판
  • 1936스페인 내전에서 아나키스트 혁명 지지 활동

애나 루이즈 스트롱

Anna Louise Strong
미국 공산당 공산주의 미국 미국 1885–1970 ○ 자연사

러시아·중국 혁명을 50년간 현장에서 기록한 미국인 저널리스트, 『모스크바 뉴스』 창간자

「우리는 이 나라 노동이 시도한 가장 거대한 행동에 착수하고 있다 —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1919년 시애틀 총파업 직전 사설

미국 네브래스카 출신 좌파 저널리스트이자 공산주의자. 시카고대 철학 박사 후 시애틀 총파업(1919)을 취재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21년 소련으로 건너가 1930년 영자신문 『모스크바 뉴스』를 창간했다. 1946년 옌안에서 마오쩌둥을 인터뷰해 '모든 반동파는 종이호랑이'라는 유명한 발언을 기록했고, 1949년 소련에서 첩자 혐의로 추방되었다가 1955년 명예 회복 후 중국에 정착했다. 이후 '외국인 친구'로서 문화대혁명기까지 마오의 중국을 취재하며 30권 이상의 저작을 남겼다. 20세기 공산주의 혁명들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서방에 전한 독보적 증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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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5네브래스카주 프렌드에서 진보적 목사 가정의 딸로 출생
  • 1908시카고대 철학 박사 — 「기도의 사회심리학」으로 학위 취득
  • 1916–1918시애틀 교육위원 선출 — IWW 지지·반전 활동으로 리콜
  • 1919『시애틀 유니언 레코드』 편집자 — 시애틀 총파업을 현장 취재
  • 1921AFSC 구호단원으로 소련행 — 볼가 기근 구호 참여 후 모스크바 특파원 정착
  • 1930소련 최초 영자신문 『모스크바 뉴스』 창간·편집장
  • 1931소련 농업경제학자 조엘 슈빈과 결혼 (1942년 사별)
  • 1937–1938스페인 내전·중국 항일 근거지 종군 취재
  • 1946옌안에서 마오쩌둥 인터뷰 — 「모든 반동파는 종이호랑이」 발언 기록
  • 1949소련 당국에 체포, 「미국 간첩」 혐의로 추방 — 1955년 명예 회복
  • 1958–1970중국 영구 정착 — 마오·저우언라이와 교류하며 '외국인 친구'로 활동
  • 19703월 29일 베이징에서 심장마비 사망 — 저우언라이·궈모뤄 문상

존 리드

John Reed
독립 활동 공산주의 미국 미국 1887–1920 ○ 발진티푸스

볼셰비키 혁명의 목격자에서 미국 공산당 창립자로: 크렘린 성벽에 묻힌 미국인

붉은광장 혁명 희생자 합동 장례식. 리드는 깨달았다. 경건한 러시아 민중은 더 이상 사제가 필요 없었다. 그들은 지상에 어떤 천국보다 찬란한 왕국을 짓고 있었다.

미국 언론인이자 공산주의자. 1917년 10월 혁명을 목격하고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썼다. 미국 공산노동당을 공동 창립하고 코민테른 집행위원이 되었다. 크렘린 벽에 안장된 극소수 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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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하버드대 졸업, 뉴욕에서 저널리즘 경력 시작
  • 1913『더 매시스』 기자 합류, 패터슨 파업 취재 중 첫 체포
  • 1913–1914멕시코 혁명 종군기자 — 판초 비야 군대와 4개월 동행, 『반란의 멕시코』 출간
  • 1917페트로그라드에서 10월 혁명 직접 목격, 볼셰비키 정부 외무인민위원부에서 활동
  • 1919『세계를 뒤흔든 10일』 출간, 미국 공산노동당(CLP) 공동 창립
  • 1919–1920코민테른 집행위원, 제2차 코민테른 대회 미국 대표, 바쿠 동방민족대회 참석

폴 리로이 로브슨

Paul Leroy Robeson
미국 미국 1898–1976 ○ 자연사

'올 맨 리버'를 투쟁의 찬가로 바꾼 예술가

1937년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올 맨 리버〉의 체념적 가사를 바꿔 불렀다: "하지만 나는 계속 웃는다 / 우는 대신에 / 나는 계속 싸워야 한다 / 죽는 그날까지." 웨일스에서 "예술가는 편을 들어야 한다. 나는 선택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선언했다.

세계적 베이스-바리톤이자 배우로 〈올 맨 리버〉와 《오셀로》로 정상의 예술가에 오르면서도, 그 예술을 흑인 해방운동과 국제 반식민주의 투쟁에 바친 사회주의자. 스페인 공화파와 1949년 파리 평화대회를 지지한 뒤 소련 지지를 철회하지 않아 매카시 시대 여권 박탈과 블랙리스트를 겪었지만, 1958년 대법원 판결로 여권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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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1919러트거스대학, 미식축구 올아메리칸 2회, 졸업생 대표
  • 1919–1923컬럼비아 로스쿨, NFL 선수 활동
  • 1924–1928《황제 존스》 등 주연, 할렘 르네상스 스타로 부상
  • 1928–1939런던 《쇼 보트》로 세계적 명성, 《오셀로》(1930)로 영국 첫 흑인 오셀로
  • 1934첫 소련 방문 — "처음으로 흑인이 아니라 한 인간이다"
  • 1937–1939스페인 공화파 지지, 국제여단 방문, 아프리카문제위원회 활동
  • 1943–1945브로드웨이 《오셀로》 — 백인 출연진과 첫 흑인 오셀로, 296회 공연
  • 1949파리 평화대회 연설 후 피크스킬 폭동, 블랙리스트 시작
  • 1950–1958여권 박탈, HUAC 조사, 《프리덤》 창간, 스탈린 평화상(1952)
  • 1958대법원 판결로 여권 회복, 《Here I Stand》 출간
  • 1958–1960유럽·소련·호주·뉴질랜드 순회공연, 《오셀로》 출연
  • 1961–1963건강 악화, 동베를린 부흐 클리닉에서 회복
  • 1963–1976은둔 생활, 필라델피아에서 뇌졸중 합병증으로 사망

스베틀라나 이오시포브나 알릴루예바

Светлана Иосифовна Аллилуева
미국 러시아 1926–2011 ○ 결장암

스탈린의 외동딸이자 크렘린을 버린 최초의 목격자

2010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그는 내 인생을 망가뜨렸다" — 문학 공부를 거부하고 카플레르를 체포했을 때.

이오시프 스탈린의 외동딸로, 1967년 인도에서 미국으로 망명하여 크렘린 내부를 서방에 최초로 증언한 회고록으로 국제적 파장을 일으켰다. 《친구에게 보내는 스무 통의 편지》는 아버지의 사적 면모와 소비에트 지배층의 삶을 폭로한 기록으로 평가되며, 이후 귀환과 재망명을 거듭하면서도 평생 스탈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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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모스크바대학 역사학부 졸업
  • 1954문헌학 후보학위 취득
  • 1956–1967세계문학연구소 연구원 및 번역가
  • 1967인도에서 미국으로 망명, 《친구에게 보내는 스무 통의 편지》 출간
  • 1978미국 시민권 취득, 라나 피터스로 개명
  • 1984–1986소련 귀환 후 재차 미국으로 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