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얀손

Николай Михайлович Янсон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에스토니아 1882–1938 ✕ 처형

에스토니아 출신 볼셰비키, 강제수용소 체계를 구상한 소련 법무인민위원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열아홉 살 얀손은 아버지와 함께 겨울궁전 행진에 나섰다가 총격 속에서 아버지가 중상을 입는 장면을 목격했다.

에스토니아 출신 볼셰비키 혁명가로, 1905년 레벨(탈린) 노동자대표소비에트 의장을 지낸 후 미국 망명 시기 에스토니아 노동자 사회주의연맹을 조직했다. 1920년대 중앙통제위원회 간부로 당 숙청을 주도했으며, 1928년 톨마초프·야고다와 함께 기존 교도소 체계를 OGPU 강제수용소 모델로 전환할 것을 스탈린에게 제안했다. 이후 러시아공화국 법무인민위원, 소련 수상운수인민위원을 지냈으나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처형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5레벨 노동자대표소비에트 의장
  • 1907–1917에스토니아 노동자 사회주의연맹 서기 (미국)
  • 1921–1923금속노조 중앙위원회 서기
  • 1923–1927중앙통제위원회 서기
  • 1927–1930중앙통제위원회 당콜레기야 서기
  • 1928–1930러시아공화국 법무인민위원
  • 1931–1934소련 수상운수인민위원
  • 1935–1937글라브세브모르푸티 부국장

아우구스트 이바노비치 코르크

Август Иванович Корк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에스토니아 1887–1937 ✕ 처형

제국 장교에서 붉은 군대 최고위 사령관으로

“코르크는 나의 자랑이다. 각 전선마다 제1바이올린을 켜는 사령관이 있듯, 서부전선에서는 코르크가 그 바이올린이다” — 총사령관 세르게이 카메네프, 1920년 투하쳅스키에게 보낸 직통 회선에서

에스토니아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짜르 군대 참모본부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정예 장교였다. 1918년 자원입대한 붉은 군대에서 내전기 제15군 사령관으로 페트로그라드를 방어하고 폴란드 전선에서 공세를 지휘했으며, 제6군 사령관으로 페레콥-촌가르 작전에서 브란겔의 백군을 격멸했다. 내전 후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을 거쳐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교장까지 오르며 붉은 군대 최고위 사령관(2급 군사령관)이 되었고, 독일 주재 무관으로도 복무했다. 1937년 투하쳅스키 사건으로 체포되어 총살되었고, 1957년 복권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8–1914제98 유리예프스키 보병연대 장교, 이후 니콜라예프 참모본부 아카데미 수료 (1급)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제20군단, 제3시베리아군단, 제10군 참모 장교; 서부전선 항공 담당 장교 (참모 대위)
  • 1918.06붉은 군대 자원입대, 전러시아 총참모부 작전과 근무
  • 1919.02–05에스토니아 적군 (에스토니아 노동코뮌 군대) 참모장
  • 1919.06–08제7군 부사령관 — 페트로그라드 방어, 유데니치 군 격퇴
  • 1919.08–1920.10제15군 사령관 —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 1920.10–1921.05제6군 사령관 — 페레콥-촌가르 작전, 브란겔 백군 최종 격멸
  • 1921–1922하리코프 군관구 사령관, 이후 우크라이나·크림 군 부사령관
  • 1922–1923투르케스탄 전선군 사령관 — 바스마치 반군 진압
  • 1924–1927서부 군관구 사령관 → 캅카스 적기군 사령관 → 벨로루시 군관구 사령관
  • 1927–1928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
  • 1928–1929소련 주독 무관; 독일 국가방위군 교육 시설에서 연수
  • 1929.05–11붉은 군대 보급국장
  • 1929–1935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
  • 1935–1937프룬제 군사아카데미 교장 겸 정치위원 (2급 군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