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경제학자들」을 분석한 글들에는 '사기꾼'이나 '무식한 자'라는 말이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경제학자로, 노보시비르스크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수학했다. 1988년 논문 「1965년 소련 경제개혁의 교훈」에서 코시긴 개혁에 대한 중앙 부처와 고스플란의 저항이 단순한 관료적 이기심이 아니라, 부분적 시장 개혁이 중앙계획 체계를 파괴하면서도 작동 가능한 대안은 내놓지 못한다는 합리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엘먼과 함께 『소련 경제체제의 파괴』를 편집했으며, 이 체제 비양립성 테제는 소련 개혁 실패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의 중심 논거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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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노보시비르스크 대학 경제학 디플로마
1985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제학 박사
1984–2002계획경제연구소(Command Economies Research, Inc.) 설립·대표, 미 국방부·CIA 계약 연구 수행
그는 2009년 홀로도모르를 조직한 공산 지도자들의 기념비를 없애지 말고, 곁에 '이 인물은 홀로도모르의 창시자'라 새긴 검은 명판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바실 마로치코는 1920~1930년대 우크라이나 농촌과 홀로도모르를 연구해 온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다. 그의 연구는 기근을 추상적 재난이 아니라 곡물 징발과 농촌 통제를 결합한 국가 정책의 결과로 분석한다. 그는 흑색명부가 우크라이나 SSR 405개 구역 중 252개를 포괄했다는 계산을 제시하며, 식량 박탈과 행정적 격리가 농민 사회를 어떻게 압박했는지 보여 주었다.
하버드대학교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석좌교수이자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을 지낸 역사학자로, 동유럽과 냉전의 지성사·국제사를 연구해 왔다. 2018년 『체르노빌: 비극의 역사』로 베일리 기퍼드상을 수상했으며, 이 책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글라스노스트를 촉발하고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의 기반을 형성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제국』, 『유럽의 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소련 해체와 동유럽 민족 정체성의 역사적 기원을 재해석하며 현대 동슬라브 역사서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고향 마르키우카에 정착한 러시아 이주민 401가구 가운데 329가구가 1년 안에 돌아갔다는 자료를 들어, 그 정착이 오늘날 돈바스 분리주의의 뿌리라는 통설을 근거 없는 신화라고 반박했다.
헤나디 예피멘코는 20세기 전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정치·사회사를 연구한 우크라이나 역사가다. 그는 홀로도모르 이후 농촌 재정착을 두 차례 파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국가가 곡물 생산 기반을 회복하려 경제적으로 추진한 정책과 이주민의 대규모 귀환을 함께 밝혔다. 그의 연구는 인구 이동을 민족 구성의 단순한 변화로 과장하지 않고, 기근 뒤 농촌의 노동력과 국가 통치가 맞물린 문제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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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4루한스크 국립 교육기관 역사학부에서 수학
1993–1997마르키우카 중등학교 역사 교사
1997–2000우크라이나 역사연구소 대학원
2001「1932~1938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연방공산당의 민족·문화 정책」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2000–현재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역사연구소 20~30년대 우크라이나사 부문 연구원
2013「기근 이후 시기 이주와 추방」에서 1933~1934년 재정착의 지역별 자료를 체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