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파벨 밀류코프

Павел Милюков
입헌민주당 제정·백색진영 소련 러시아 1859–1943 ○ 자연사

입헌민주당(카데트)의 지도자: '어리석음인가 반역인가'

1916년 11월 두마 연단에서 그는 정부의 실패를 하나하나 열거한 뒤 매번 같은 후렴구를 던졌고, 의원들은 "반역이다!"라고 외쳐 답했다.

입헌민주당(카데트) 지도자이자 역사가. 1916년 '어리석음인가 반역인가' 연설로 차르 체제를 뒤흔들었고, 외무장관 시절 4월 위기를 촉발했다. 망명 후 파리에서 신문을 발행했으며, 대독소전 때 소련 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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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입헌민주당(카데트) 창당
  • 1906비보르크 선언 기초 — 의회 해산에 대한 저항 촉구
  • 1907–1917제3·4대 두마 의원, 카데트 원내대표
  • 1915진보블록(Progressive Bloc) 결성 주도
  • 1916.11'어리석음인가 반역인가' 연설 — 슈튀르메르 정부 맹비판
  • 1917.03–05임시정부 외무장관 — 밀류코프 비망록으로 4월 위기 촉발 후 사임
  • 1917.08코르닐로프 사건 — 케렌스키·코르닐로프 대립 속 혼란 가중
  • 1920–1940파리에서 망명 신문 『최신소식』 발행
  • 1941–1943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소련 지지 — 스탈린그라드 승리에 기뻐함

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 스코블린

Николай Владимирович Скоблин
제정·백색진영 러시아 러시아인 1893–1937/1938? ✕ 실종, 사망 경위 불명

백군 장군이 된 비밀 협력자

1937년 밀러를 만나게 한 뒤, 스코블린은 파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니콜라이 스코블린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에서 싸운 백군 장교로, 코르닐로프 타격사단을 이끈 젊은 소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망명 뒤 그는 러시아 전군사연합의 핵심 인물이 되었지만, 소련 정보기관의 협력자로 포섭되어 백계 러시아인 망명 공동체 내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투하쳅스키 사건을 둘러싼 독일 측 문서와 정보가 스탈린의 숙청을 촉발했는지, 아니면 스탈린의 주도 아래 조작·활용되었는지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다. 1937년 예브게니 밀러 납치에 관여한 뒤 사라졌으며, 그의 최후는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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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군 장교
  • 1917–1918코르닐로프 타격부대 대대장
  • 1918–1920코르닐로프 타격연대·사단 지휘관, 백군 소장
  • 1920–1929갈리폴리·불가리아 망명, 코르닐로프 연대 지휘
  • 1929–1937파리 러시아 전군사연합 코르닐로프 연대장
  • 1935–1937ROVS 내부선 방첩 책임자
  • 1937밀러 납치 작전 협력 뒤 실종

빅토르 이바노비치 말체프

Виктор Иванович Мальцев
제정·백색진영 소련 러시아 1895–1946 ✕ 처형

소련 공군 대령에서 ROA 공군 사령관으로, 블라소프 운동의 항공전력 창설자

1941년 11월, 독일군이 점령한 얄타에서 붉은 공군 대령 정복 차림으로 독일 사령부에 모습을 드러내 볼셰비키와 싸우겠다고 말했다.

소련 공군 대령 출신으로, 1941년 독일군 점령 하의 얄타에서 투항하여 대소련 협력 진영으로 전향했다. 블라소프 휘하 러시아 해방군(ROA) 공군을 조직하고 KONR 공군 사령관(소장)으로서 약 5천 명 규모의 항공전력을 편성했으나, 실전에 투입되기도 전에 종전을 맞았다. 1938년 NKVD에 체포되어 고문당했으나 자백하지 않고 석방된 경험이 그를 반볼셰비키로 돌아서게 한 결정적 계기였으며, 수감 경험을 담은 『GPU 컨베이어』를 출간해 독일의 선전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후 미군에 의해 소련으로 송환되어 1946년 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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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붉은 군대 자원입대; 예고리옙스크 비행학교 졸업(1919)
  • 1925–1927모스크바 근교 중앙비행장장
  • 1927–1931시베리아 군관구 공군 사령부 부사령관, 이후 사령관
  • 1936대령 진급
  • 1937투르크멘 민간항공관리국장
  • 1938–1939NKVD에 체포되어 고문당함; 자백 없이 석방
  • 1939–1941얄타 아에로플로트 요양소장
  • 1941얄타에서 독일군에 투항; 1942년 얄타 시장 역임
  • 1943–1944소련 포로 조종사들을 모집해 동방 항공대 편성
  • 1945.02소장 진급, KONR 공군 사령관 임명 (약 5천 명, 항공기 40-45대)
  • 1945.04–08미군에 항복; 소련으로 송환됨
  • 1946.08.01반역죄로 사형 선고, 부티르카 교도소에서 교수형

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 블라소프

Андрей Андреевич Власов

모스크바 방어전의 영웅에서 나치 협력자로 전향한 러시아 해방군 지도자

1942년 6월, 제2충격군이 포위되었을 때 사령부는 비행기로 탈출할 것을 제안했다. 블라소프는 거부하고 부하들과 함께 독일군 점령지에 숨었다가 열흘 뒤 농부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안드레이 블라소프는 붉은 군대 중장으로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20군을 지휘해 '모스크바의 수호자'로 불렸으나, 1942년 류반 작전에서 포로가 된 후 나치 독일로 전향한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 해방군(ROA)과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KONR)의 지도자로서 반스탈린주의 민주 러시아를 표방했고, 1944년 프라하 선언을 통해 민족자결과 기본적 자유를 내건 강령을 발표했다. 나치는 그를 선전 도구로만 이용했으나, 전쟁 말기 ROA 제1사단은 프라하 봉기에 가담해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종전 후 소련군에 체포되어 비밀재판에서 반역죄로 사형이 선고되었고, 그의 행적은 오늘날까지 러시아 역사학과 기억 정치에서 첨예한 논쟁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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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붉은 군대 입대, 남부전선에서 백군·마흐노 세력과 교전
  • 1930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 입당,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교관
  • 1938–1939중국 파견, 장제스 군사고문으로 복무
  • 1940–1941제99소총사단장(최우수사단 선정), 이어 제4기계화군단장
  • 1941제37군 사령관(키예프), 제20군 사령관으로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솔네치노고르스크 탈환
  • 1942제2충격군 사령관, 류반 작전 중 포위·포로, 나치에 협력 전향
  • 1944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KONR) 의장, 프라하 선언 발표
  • 1945러시아 해방군 총사령관, 종전 후 소련군에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