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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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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소비에트화의 얼굴
1939년 10월 빌뉴스 반환 경축식에서 팔레츠키스는 연단에 올라 스메토나 대통령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 발언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된 그는 불과 8개월 뒤 소련의 후원 아래 리투아니아의 새 지도자가 되어 돌아왔다.
리투아니아의 소비에트화 과정에서 지도자가 되었고, 이후 민족소비에트 의장을 지냈다. 발트 공화국 대표제의 상징적 인물이다.
상세 이력 보기
- 1920년대–1930년대리투아니아 좌파 언론인·정치인으로 활동
- 1940소련의 리투아니아 병합 과정에서 인민정부 수반이 됨
- 1940–1967리투아니아 SSR 최고소비에트 간부회 의장, 공화국의 공식 얼굴
- 1966–1970민족소비에트 의장, 발트 공화국 대표제의 상징
- 1970 이후명예직과 회고의 영역으로 물러남
소련 리투아니아를 34년간 통치한 공산주의자
1949~50년, 모스크바가 리투아니아의 구세대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려 하자 스니에치쿠스는 스탈린에게 직접 맞섰다. 리투아니아는 구시대 공산주의자 단 한 명도 체포되지 않은 유일한 공화국이 되었다.
34년간 리투아니아 공산당 제1서기를 지낸 소련 최장수 공화국 지도자다. 지하운동 출신으로 소비에트화를 주도했으나, 이후 모스크바 간섭을 완충하며 리투아니아어와 문화 공간을 지켜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0–1921리투아니아 공산당 알리투스 지하위원회 책임자
- 1921–1925스몰렌스크에서 리투아니아 공산당 출판국 근무
- 1925–1926코민테른 집행위 내 리투아니아 공산당 대표부 근무
- 1933–1936코민테른 집행위 내 리투아니아 공산당 대표부 근무
- 1927–1930리투아니아 공산당 중앙위 서기 (지하), 선전·조직 담당
- 1936–1939리투아니아 공산당 제1서기 (비합법, 카우나스)
- 1940.06–08리투아니아 국가보안국장
- 1940–1974리투아니아 공산당 제1서기 (34년)
- 1942–1944리투아니아 파르티잔 운동 참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