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포르피리예비치 게오르가제
Михаил Порфирьевич Георгадзе네 국가원수 아래 25년간 모든 소비에트 법령에 공동 서명한 제도적 닻
1982년 11월 23일, 브레즈네프 사망 13일 만에 최고회의 회의장에 참석했다가 자리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25년의 행정적 연속성이 한 순간에 끊어졌다.
소비에트 최고회의 상무회 서기(1957–1982)로서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대 네 명의 국가원수 아래 모든 법령에 공동 서명한 행정 중심축이다. 그루지야 농민 가정 출신으로 농업 공학을 전공했고, 조국전쟁에서 중상을 입었다. 그루지야 공산당 제2서기와 각료회의 제1부의장을 거쳐 모스크바로 올라가 25년간 최고회의 상무회의 제도적 연속성을 체현했다. CPSU 중앙위원회 위원 후보(1961–1982)로서 당과 국가 기구 사이의 조용하지만 필수적인 고리였다.
상세 이력 보기
- 1941–1951소련 농업부, 기술자에서 부서장까지 승진
- 1941–1942위대한 조국전쟁 참전, 중상으로 퇴역, 적성훈장 수훈
- 1951–1953그루지야 SSR 농업차관
- 1953–1954그루지야 SSR 농업장관
- 1954–1956그루지야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서기
- 1956–1957그루지야 SSR 각료회의 제1부의장
- 1957–1982소련 최고소비에트 상무회 서기
- 1961–1982CPSU 중앙위원회 위원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