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보리스 이그나티예비치 아르바토프

Борис Игнатьевич Арватов
소련공산당·볼셰비키 소련 공산주의 소련 리투아니아 1896–1940 ✕ 자살

아방가르드의 생쥐스트, 생산예술의 이론가

「예술 밖으로 뛰어내려야 비로소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 나탄 알트만에 관한 책(1924)의 마지막 주석에서, 아르바토프는 형식 분석에서 사회적 사실로의 자신의 방법론적 도약을 이 한 문장으로 정식화했다.

프롤레트쿨트 이론가이자 ЛЕФ 공동 창립자. 예술을 산업과 융합하는 '생산예술'을 주창하며 구성주의 미학의 기초를 놓았다. 전시 뇌진탕 후유증으로 1920년대 말 창작을 중단했고 1940년 자살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2바르샤바에서 문학 활동 시작
  • 1917사회혁명당원, 툴라 현 위원회 부의장, 제1차 소비에트 대회 및 제헌의회 대의원
  • 1919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 입당, 폴란드 전선에서 정치위원으로 복무
  • 1920–1923프롤레트쿨트 이론가, ИНХУК 연구원, ЛЕФ 공동 창립과 잡지 활동
  • 1923–1926『예술과 계급』(1923), 『예술과 생산』(1926) 출간; 형식-사회학적 방법 정식화와 생산예술론 전개
  • 1927–1930『사회학적 시학』(1928), 『선동 및 생산 예술에 관하여』(1930) 출간; 뇌진탕 후유증 악화로 활동 위축
  • 1940오랜 투병 끝에 모스크바에서 자살

아이나스 라사스

Ainius Lašas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인 ?–

발트 정치와 국제관계를 연구한 리투아니아 정치학자

2007년 논문 「피의 일요일」에서 그는 1991년 1월 빌뉴스와 리가 사건을 둘러싼 고르바초프의 무죄 주장을 재검토했다. 그는 고르바초프가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명령했을 가능성은 낮지만 그 결과를 낳은 해법을 받아들였다고 결론지었다.

아이나스 라사스는 리투아니아의 정치학자로, 발트 지역 정치와 국제관계를 연구한다. 그는 1999년 LCC 국제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빌뉴스 대학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방송 기자로 일한 뒤 옥스퍼드 대학 선임연구원과 배스 대학 강사를 거쳐 리투아니아로 돌아와 카우나스 공과대학 사회과학예술인문학부 학장을 맡았다. 연구 분야는 위협 인식과 역사 기억, 음모론을 다루는 정치심리학과 비공식적 기업·국가 관계를 다루는 정치문화다.

상세 이력 보기
  • 2000년대리투아니아 정치학자
  • 2007「피의 일요일」 저자, Journal of Baltic Studies
  • 2008발트해 지역 안보 협력 연구 공저자
  • 2000년대–현재발트 정치·국제관계 연구
  • 1999LCC 국제대학 졸업(영어영문학 학사)
  • 2000년대빌뉴스 대학 저널리즘 석사, 워싱턴 대학 국제관계 박사
  • 2010『유럽연합과 나토 확대: 중동부 유럽』(팰그레이브 맥밀런)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