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오토 율리예비치 슈미트

Отто Юльевич Шмидт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독일 1891–1956 ○ 병사

북극을 과학으로 정복한 수학자, 글라브세브모르푸티의 설계자

두 달간의 빙판 체류 내내 그는 매일 저녁 텐트에서 철학·수학·지리 강연을 열었다. 결핵으로 각혈하면서도 끝까지 진영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고, 104명 중 단 한 명의 무단 이탈도 없었다.

수학자·북극 탐험가·국가행정가. 모길료프 출생의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군론 연구로 모스크바 대수학파를 창건했다. 1932년 쇄빙선 시비랴코프호로 북극해 항로를 세계 최초로 단일 항해로 돌파했고, 1934년 첼류스킨호 침몰 후 빙판 위에서 104명의 생존자를 이끌었다. 글라브세브모르푸티 국장으로 북극 개발을 총괄했으며, 말년에는 태양계 행성이 차가운 먼지 구름의 응축으로 형성되었다는 우주기원론을 제창하여 소련 과학계에 큰 영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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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3키예프 대학 물리수학부 졸업, 군론 연구 시작
  • 1916『추상군론』 출판, 키예프 대학 사립강사
  • 1918–1920식량인민위원부 간부, RSDLP(국제주의자)에서 RKP(b)로 편입
  • 1921–1924국립출판사 소장, 교육·출판 개혁 주도
  • 1924–1942『대소비에트백과사전』 초대 편집장
  • 1929–1949모스크바 대학 고등대수학과 창설·주임, 소련 대수학파 지도
  • 1930–1932전연방북극연구소 소장
  • 1932시비랴코프호로 북극해 항로 최초 단일 항해 통과
  • 1932–1938북극해 항로 총국(글라브세브모르푸티) 국장
  • 1934첼류스킨호 침몰, 빙판 위에서 104명과 두 달 생존·전원 구조
  • 1937표류관측소 '북극-1' 설립 주도,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
  • 1939–1942소련과학아카데미 부총재
  • 1942–1956이론지구물리학연구소 소장, 태양계 '차가운 강착' 우주기원론 연구

로베르트 하베만

Robert Havemann
동독 반체제 인사 동독 독일 1910–1982 ○ 자연사

나치의 사형 선고를 살아남고 뒤에 사회주의통일당에서 쫓겨나 가택연금된 동독의 화학자·반체제 인사

뮌헨에서 태어나 베를린과 뮌헨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 물리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항 단체 「유럽 연합」을 세웠다가 1943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전쟁에 필요한 연구를 이유로 집행이 거듭 미뤄져 살아남았다. 전후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들을 이끌다 미국 당국에 해임되었고, 1950년 훔볼트 대학교 물리화학 교수가 되어 인민의회 의원과 독일평화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53년 6월 16일 젤프만과 함께 정부 청사 앞 군중 앞에 섰다. 1963~1964년 강의 「도그마 없는 변증법」으로 당에서 쫓겨나고 교수직을 잃었다. 1976년 비어만 추방에 항의한 뒤 가택연금되었고, 1982년 그륀하이데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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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독일 공산당 입당
  • 1943게슈타포에 체포, 사형 선고
  • 1950훔볼트 대학교 물리화학 교수
  • 1950–1963인민의회 의원
  • 1964사회주의통일당에서 제명
  • 1976–1979그륀하이데에서 가택연금

보리스 빅토로비치 라우셴바흐

Борис Викторович Раушенбах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독일계 1915–2001 ○ 자연사

수용소에서 보스토크까지: 우주비행 제어의 개척자

내 인생에서 상관은 코롤료프와 켈디시 단 두 사람뿐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결한 분들이었다. 그게 중요하다.

소련 우주개발의 기초를 닦은 물리학자이자 로켓 공학자. 코롤료프의 OKB-1에서 우주선 방향제어 및 유도체계를 설계하여 루나 3호의 달 뒷면 촬영(1959)과 가가린의 보스토크 1호 비행(1961)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볼가 독일인 가계 출신으로 1942년 민족 기준으로 강제수용되었으나 수용 중에도 계산을 계속했고, 켈디시의 도움으로 복귀하여 우주 프로그램의 핵심 설계자가 되었다. 후기에는 회화의 원근법에 대한 수학적 연구와 정교회 신학으로 전환하여 독창적인 학제적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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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1937레닌그라드 민간항공대학 수학 및 글라이더 연구
  • 1937–1941RNII (로켓연구소) 엔지니어 — 코롤료프 휘하 유도탄 비행제어
  • 1942–1946타길라그 강제수용소 수감 — 볼호비티노프 설계국에 계산 제공
  • 1946–1948니즈니타길 특별정착 — 켈디시 산하 계산국 근무
  • 1948–1954NII-1 연구원 — 켈디시 지도하 진동 연소 이론 연구
  • 1955–1959OKB-1 — 코롤료프 지도하 우주선 방향제어 선구적 연구
  • 1960–1973OKB-1 부서장 — 루나·보스토크·화성·금성·소유즈 유도체계 총괄
  • 1959–1978모스크바 물리기술연구소(MFTI) 교수 및 이론역학 주임
  • 1978–2001과학아카데미 우주개척자 유산위원회 위원장 · 예술이론·신학 연구

헬무트 그뢰트루프

Helmut Gröttrup
소련 소련 공산주의 독일 독일 1916–1981 ○ 자연사

페네뮌데에서 고로도믈랴까지, R-7의 개념적 선조를 설계한 독일인 로켓 기술자

「낡은 보수적 V-2 형태를 버리면 2천 마일 사거리에 도달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원추형 형상이 근본적으로 유일한 해법입니다.」 1949년 아내 이르가르트에게

독일의 응용물리학자이자 로켓 유도 시스템 전문가. 페네뮌데에서 베르너 폰 브라운의 지휘 아래 V-2 유도 제어를 개발했고, 1944년 패전을 논했다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체포되기도 했다. 1946년 소련으로 강제 이주되어 고로도믈랴 섬에서 170여 명의 독일 기술자 집단을 이끌며 G-4(원추형 단일 단계)와 G-5(패킷 방식 다단)를 설계했다. 이 개념들은 훗날 코롤료프의 R-7 ICBM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으며, 1949년 소련 평가단은 G-4가 R-3보다 우수하다고 판정했다. 1953년 서독 귀환 후 로켓을 떠나 스마트 카드를 발명하고 독일어 '인포르마틱' 용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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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1945V-2 유도 제어 부서, 페네뮌데 육군 연구소
  • 1945–1946뷰로 그뢰트루프 소장, 블라이헤로데 (소련 점령지구)
  • 1946노르트하우젠 연구소 독일 측 책임자, 이후 중앙공장 총책임자
  • 1946–1950NII-88 분소 1호 소장, 고로도믈랴 섬
  • 1954–1958연구원, SEL (슈투트가르트)
  • 1970–1980GAO 전무이사, 기제케 앤 데브리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