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1870년 설도 있다) 세미팔라틴스크주에서 태어나 옴스크 기술학교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임업대학을 마쳤고, 아바이 쿠난바예프의 첫 전기를 썼다. 1905년 입헌민주당(카데트)에 들어가 1906년 국가 두마 의원이 되었고, 비보르크 호소문에 서명해 투옥된 뒤 1917년까지 사마라에서 유형 생활을 했다. 1917년 임시정부의 투르가이주 위원이 되었으나 카자흐 자치 문제로 카데트와 갈라서 알라시 당을 세웠고, 그해 알라시 오르다 정부 의장으로 뽑혔다. 1919년 말까지 시베리아의 백군 정부들 편에 섰다가 소비에트 권력과 타협했고, 모스크바에서 출판 일을 하다 1937년 총살되었다. 1989년 복권되었다.
“나는 투르키스탄 군단을 이끌라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더 이상의 협력도 거부한다. 내 결정의 모든 결과를 나는 알고 있다.” — 리벤트로프에게 보낸 편지, 1941년
무스타파 쇼카이는 러시아 제국 붕괴 후 중앙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자치 정부인 코칸트(투르키스탄) 자치 정부를 이끈 카자흐 민족주의 정치 지도자였다. 페트로그라드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국가두마 무슬림 분과 서기로 활동하며 제정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식민 정책에 맞섰다. 1918년 볼셰비키가 코칸트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프랑스로 망명하여 《야쉬 투르키스탄》 등 간행물로 투르키스탄 독립 사상을 국제적으로 전파했으며, 1941년 나치가 투르키스탄 군단 조직을 제안하자 포로수용소의 실태를 목격하고 이를 거부했다. 그 직후 베를린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으나,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독립 선구자로 재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