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통일진보위원회에 들어갔고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의 영웅이 되었다. 1913년 쿠데타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전쟁장관이 되어 탈라트·제말과 「세 파샤」로 제국을 다스렸다. 독일과의 동맹으로 오스만을 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였고, 1914년 12월 사르카미시에서 대군을 잃은 뒤 패배를 아르메니아인 탓으로 돌렸다.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아시리아인 제노사이드의 주요 가해자였다. 패전 뒤 달아나 궐석 사형을 선고받았다. 볼셰비키와 손잡았다가 1921년 중앙아시아에서 바스마치 반란군 편으로 넘어갔고, 1922년 붉은군대와 싸우다 죽었다.
살로니카에서 태어나 청년 튀르크 운동에 가담했고, 1차 세계대전 때 갈리폴리 방어로 이름을 얻었다. 패전 뒤 1919년 5월 삼순에 상륙해 점령에 맞선 국민운동을 조직했고, 1920년 앙카라에 대국민의회를 열었다. 볼셰비키 정부의 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그리스군을 물리쳤고, 로잔 조약으로 승리를 인정받았다. 이 시기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에 대한 인종 청소가 학살·추방·주민 교환으로 마무리되었다.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일당 체제 아래 세속화와 튀르크화 정책을 폈다. 1938년 죽었다.
터키 독립전쟁 동부 전선 사령관으로 1920년 아르메니아를 침공해 알렉산드로폴 조약을 받아 낸 장군
1882년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오스만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갈리폴리와 쿠트, 캅카스 전선에서 싸웠다. 무스타파 케말의 국민운동에 가담해 독립전쟁의 동부 전선을 지휘했다. 1920년 9월 아르메니아를 침공해 카르스와 알렉산드로폴을 점령했고, 이 원정에서 그의 군대는 아르메니아 민간인 수만 명을 쫓아내고 학살했다. 12월 알렉산드로폴 조약에, 1921년 카르스 조약에 서명했다. 1924년 첫 야당 진보공화당을 세웠으나 당이 폐쇄되었고, 1946년 대국민의회 의장이 되어 1948년 재임 중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