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선
A-A line
A-A선은 나치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설정한 가상의 전략 종착선으로, 북쪽의 아르한겔스크와 카스피해 연안의 아스트라한을 잇는다. 1940년 12월 18일 총통 지령 21호는 아스트라한을 명시하지 않은 채 '볼가강-아르한겔스크 일반선'을 목표로 제시했고, A-A선이라는 약칭은 이후 나치 선전에서 굳어졌다.
상세
형성과 의미
독일어 명칭은 A-A-Linie 또는 AA-Linie이며, 아르한겔스크-아스트라한선을 가리킨다. 이 선은 방어 국경이 아니라 바르바로사의 군사적 종착선이자, 점령지에 수탈과 식민 통치 체계를 세우기 위한 계획상의 기준선이었다. 소련 전역을 한 번의 전역으로 점령하는 것은 지리적 규모상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독일군은 이 선을 전쟁의 종착점으로 삼았다. 서쪽에 남는 소련군을 1941년 겨울 전에 신속히 격파하고, 그 선에 도달하면 소련은 석유 자산의 약 86퍼센트(카프카스 산유 지역)를 잃게 된다고 계산했다. 성공할 경우 전선은 약 2,600킬로미터에 이르게 된다.
기원과 계획
구상은 1940년 7월 히틀러가 명령한 대소련 공격 계획에서 출발했고, 1940년 12월 18일 지령 21호(바르바로사)에 명문화되었다. 그 전단계로 1940년 8월 5일 에리히 마르크스가 제출한 '동부 작전안'(Operationsentwurf Ost)과 1940년 9월 15일 OKW 로스베르크 연구가 있었다. 지령 21호는 아시아 러시아 방면의 차단선을 볼가강-아르한겔스크 일반선으로 정하고, 우랄에 남는 마지막 산업 지대를 공군으로 제거할 수 있게 하려 했다. 준비는 1941년 5월 15일까지 완료하도록 했고, 공격 의도를 드러내지 말 것을 강조했다. 히틀러는 1941년 가을 라스푸티차 이전인 8~10주 안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패
바르바로사는 1941년 6월 22일, 그리스·유고슬라비아 작전으로 인한 약 5주 지연 끝에 개시되었다. 350만 명이 넘는 독일 및 추축국 군대가 약 2,900킬로미터 전선에서 공격했지만, 소련의 전투력을 파괴하고 항복을 강제하려던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독일군은 모스크바 서쪽에서 멈춰 섰고, 1941년 12월 5일 시작된 소련의 반격으로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에서 최대 240킬로미터 밀려났다. 북쪽 종점 아르한겔스크는 끝내 접근조차 하지 못했으며, 소련 카렐리야 전선이 독일-핀란드 공세를 저지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단기 전역을 전제한 전략 기획, 광대한 거리와 보급난, 소련군 병력 규모, 소련 예비군을 거듭 과소평가한 정보 실패, 라스푸티차와 혹한이 꼽힌다.
관계
이 선은 제국판무관구 설치 계획과 연결된다. 모스크바 지역의 제국판무관구 모스코비엔(초기 명칭 제국판무관구 러시아)은 지그프리트 카셰가 판무관으로 내정되었으나 종이 위에만 남았고, 우크라이나 판무관구는 동쪽 경계가 하볼가까지 닿아 사라토프와 스탈린그라드를 포함하며, 카프카스 판무관구는 아스트라한을 독일계 칼미크 행정 중심지로 삼을 예정이었다. 나치 독일의 동유럽 식민·독일화 계획인 일반계획 동부는 슬라브인, 동유럽 유대인 등 '열등민족'으로 분류된 이들에 대한 대량 학살과 민족 청소를 포함했고 우랄 너머로의 추방을 상정했으며, 부분적으로만 실행되었다. 기아 계획은 1941년 5월 2일 국가차관 회의에서 공식화되어 소련의 식량을 독일군과 독일 민간인을 위해 징발하려 했고, 3,100만~4,500만 명 규모의 기아 학살을 초래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우랄은 일반계획 동부의 원거리 목표로 기록되었고, 1941년 7월 16일 회의에서는 우랄 서쪽에 비독일 세력의 군사 권력이 다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못 박혔다.
평가와 구분
이 선을 마르크스 작전안의 종착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는 '아르한겔스크-고리키-로스토프'까지의 점령을 주장했고, 동부 작전안은 최종선을 하돈강, 중볼가, 북드비나강으로 제시했으며, 이는 후대의 아르한겔스크-아스트라한 공식과 다르다. 지령 21호는 아스트라한을 명시하지 않고 '볼가강-아르한겔스크 일반선'만 말했으며, AA-Linie라는 약칭은 나중에 선전에서 만들어졌다. 이 선은 또한 바르바로사의 종착선과는 다른, 이후의 우랄 '생활 방벽' 구상과도 구별된다. 히틀러는 이후 우랄을 충분한 국경으로 거부하며 그 중간 규모 산맥이 '유럽 세계와 아시아 세계'의 경계라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말했고, 오직 아리아 전사의 '생활 방벽'만이 국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A-A선의 명칭, 바르바로사 작전상의 전략적 목표, 총통 지령 21호와 도달 계획을 지원)
- iwm.org.uk (1940년 12월 18일 총통 지령 21호, 아르한겔스크에서 아스트라한까지의 가상선, 독일의 정복 목표와 실패 경위를 지원)
- 위키백과 (영문)
- de.wikipedia.org
- en.wikisource.org
- 위키백과 (러시아어)
- de.wikipedia.org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한국어)
- iwm.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