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iierter Kontrollrat · 1945–1990

연합국관리위원회

Allied Control Council

연합국관리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한 독일을 공동으로 통치하기 위해 미국·소련·영국·프랑스 4개 점령국이 설치한 최고 통치 기관이다. 1945년 베를린 선언과 포츠담 협정에 따라 수립되어 독일 전체에 관한 사항에 대해 최고 주권을 행사했으며, 모든 결정에는 4개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냉전이 격화되면서 1948년 3월 20일 소련 대표 소콜롭스키가 회의장에서 퇴장하여 기구는 사실상 기능을 멈췄다.

상세

설립과 구성

연합국관리위원회의 준비는 1944년 유럽자문위원회가 마련한 「독일 통제기구에 관한 협정」(같은 해 11월 14일 런던에서 조인)에 뿌리를 둔다. 독일이 무조건 항복한 뒤 1945년 6월 5일 베를린 선언으로 4개국은 독일 최고 권력을 접수했고, 위원회는 같은 해 8월 30일 정식으로 출범했다. 위원은 각 점령구 사령관이 겸했으며, 초대 위원은 주코프(소련)·아이젠하워(미국)·몽고메리(영국)·라트르 드 타시니(프랑스)였다. 본부는 베를린 쇠네베르크에 두었다.

활동

위원회는 포고·법률·명령·지시·지침의 형태로 입법 활동을 펼쳐 나치 법령과 조직의 폐지, 탈나치화, 비무장화, 독일군 해체를 추진했다. 법률 제46호(1947년 2월 25일)는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 프로이센주를 행정 단위로 폐지했다. 다만 실질 권력은 각 점령국 정부와 군정장관에게 있었고, 위원회의 결정은 권고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마비와 해체

모든 결정이 만장일치를 요구했기에 협력은 곧 흔들렸다. 미·영은 1947년 1월 1일 점령구를 통합해 이중점령구(바이조니아)를 만들고 화폐 개혁을 준비했다. 이에 맞서 1948년 3월 20일 소련 대표 소콜롭스키가 회의장을 떠났고, 이후 베를린 봉쇄(1948~1949)가 이어졌다. 위원회는 정식으로 해산되지는 않았으나 1971년 베를린 4개국 협정 때까지 사실상 활동을 접었고, 남은 공동 기능은 슈판다우 교도소 관리와 베를린 항공안전센터뿐이었다. 형식적으로는 독일 통일과 함께 1990년 「2+4 조약」으로 완전한 주권이 회복되면서 소멸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four-power governing body of occupied Germany (1945–1949/1991) and Austria, members USSR/US/UK/France, sole legal sovereign authority for Germany as a whole, seat in Schöneberg, constituted 30 August 1945, unanimity rule, Sokolovsky walkout 20 March 1948, formal lapse with 1990 reunification
  2. 위키백과 (러시아어) origin in 14 Nov 1944 control-machinery agreement, initial members Zhukov/Eisenhower/Montgomery/de Lattre, Law No. 46 abolishing Prussia, more than 80 sessions before 1948, boycott 20 March 1948
  3. germanhistorydocs.org begun meeting 30 July 1945 and officially commenced 30 August 1945, four supreme commanders doubling as military governors, unanimity requirement, Sokolovsky walked out 20 March 1948 after which the Council discontinued its work
  4. docs.historyrussia.org Marshal Sokolovsky's statements at the Control Council session of 20 March 1948 (primary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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