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ociación Internacional de los Trabajadores · 1922년–

아나르코생디칼리슴 국제노동자협회

Anarcho-syndicalist International Workers' Association

혁명적 노동조합(생디칼리슴)을 계급투쟁과 사회 변혁의 주체로 보는 아나키즘 조직 모델에 기초한 국제 연맹체. 노동조합을 즉각적 처지 개선의 수단이자 총파업을 통한 사회혁명, 국가와 자본주의 폐지를 향한 전망으로 파악하며 중앙집권과 정당·의회주의·국가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부하고 직접행동을 강조한다. 영어 약칭 IWA는 1864년 제1인터내셔널과 공유되므로 두 조직은 구별되어야 한다.

상세

명칭과 구별

영어 약칭 IWA는 1864년 제1인터내셔널(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과 공유된다. 창립 당시 명칭은 '국제노동자동맹'(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IWMA)이었고, 현재 명칭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ers' Association, IWA)로의 개칭은 1974년에 이루어졌다. 스페인어 정식 명칭은 Asociación Internacional de los Trabajadores(AIT)이며 IWA–AIT로 함께 표기된다.

창립

1922년 12월 25일부터 1923년 1월 2일까지 10개국 대표들이 베를린에서 비합법 회의를 열어 창립했다. 회의는 독일 경찰의 두 차례 급습(첫날 교외, 이후 니더쉔바이데, 알렉산더플라츠)으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고, 대표 약 200만 명을 대표했다. 창립 선언 서명국은 이탈리아 생디칼리슴노조(USI, 50만), 아르헨티나 노동자지역연맹(FORA, 20만), 포르투갈 노동총연맹(CGT, 15만), 독일 자유노동자동맹(FAUD, 12만), 프랑스 생디칼리슴방위위원회(10만)를 비롯해 스웨덴(SAC), 멕시코(CGT), 네덜란드(NAS), 칠레(IWW), 노르웨이(NSF), 덴마크 등이었으며 전체 규모는 100만 명을 넘었다. 스페인 CNT는 당시 최대 아나르코생디칼리슴 노조였으나 대표단이 회의장으로 가는 길에 체포되어 창립에 참석하지 못했고, 이듬해 60만 명을 이끌고 가입했다.

계보와 사상적 기초

IWA는 창립을 아나키스트·혁명적 생디칼리슴 국제 조직의 계보로 자리매김하며 스스로를 제1인터내셔널의 '정당한 후계자'로 내세웠다. 제1인터내셔널 분열 이후 생디마르 국제(1872-1881)와 흑색 인터내셔널(1881-87) 등 선행 아나키즘 인터내셔널 시도가 있었다. 러시아 아나르코코뮤니스트 표트르 크로폿킨은 혁명적 생디칼리슴 인터내셔널 창설의 지적 기초를 놓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혁명적 생디칼리슴·아나키즘 조직의 구성원은 아니었으나, 노동조합을 미래 자유사회의 세포이자 사회혁명의 준비 수단으로 보는 사상을 발전시켜 IWA의 목표와 원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크로폿킨은 1890년대부터 제1인터내셔널의 반권위주의 분파를 복원하려는 캠페인을 이끌고, 1902년에는 '노동 인터내셔널' 창설을 제안했으며, 이는 반권위주의 제1인터내셔널의 계승·연속으로서의 혁명적 생디칼리슴 인터내셔널 구상으로 이어졌다. 창립 총회에서 채택된 정관은 '다양한 형태의 혁명적 생디칼리슴'을 반영했으며, 이는 크로폿킨이 제기한 조직 형태(정당에 예속되지 않는 비당파적 노동조합, 아나키스트 영향력) 논의의 결과였다.

IWA 창설은 볼셰비즘과의 단절을 표시했으며, 창설 총회는 1920년 코민테른 대회에 참석했던 다수 생디칼리슴 노조가 코민테른과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7-1923년 혁명기와 그 억압을 겪은 뒤 아나르코생디칼리슴 진영은 1922년 IWA를 창설했고,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부상과 함께 국제 아나키즘 조직화에 대한 대응이었다.

조직 원칙과 실천

회원 조직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노동자와 학생을 가입시켰고, CNT는 노동자 자주경영, 연방주의, 상호부조를 3대 원칙으로 삼고 직접행동·노동자 총회를 선호하며 위원직을 순환·무보수로 운영했다. 스페인 CNT는 IWA의 최대 가맹 조직으로 역사적으로 IWA(AIT)에 가입되어 있었고, 2018년에는 다른 노조들과 함께 국제노동총연맹(ICL-CIT)을 창설했다. CNT는 약칭 CNT-AIT로도 불린다. 스페인 내전·혁명은 IWA의 핵심 관계 사건으로, CNT가 1936년 7월 반란을 저지한 무장의 주체였고 전화국·공장·전차 등이 노동조합 관리로 넘어갔다. CNT가 관리하던 전화국 접수 시도가 1937년 5월 바르셀로나 시가전으로 이어졌다.

탄압과 쇠퇴

IWA의 주요 가맹 노조는 1920-30년대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 파괴되었고(아르헨티나 FORA는 1930년 우리부루 쿠데타로 진압, 포르투갈 CGT는 1927·1934년 총파업 실패 후 지하화), 페루·브라질·콜롬비아·일본·쿠바·불가리아·파라과이·볼리비아 등지에서도 파괴되었다. 1930년대 말 합법적 아나르코생디칼리슴 노조는 칠레·볼리비아·스웨덴·우루과이에만 남았다. 아나르코생디칼리슴은 1936년 스페인 혁명기 정점에 이르렀고, CNT가 카탈루냐에서 반란군 격퇴를 주도하고 공화국 경제의 4분의 3을 집단화했으나, CNT의 공화국 정부 참여와 사회혁명의 진압을 둘러싼 논쟁 끝에 1939년 패배로 쇠퇴했다. 스페인 아나르코생디칼리슴은 투옥·살해·망명으로 탄압받았다.

전후와 현재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다른 인터내셔널들이 붕괴한 가운데에도 생디칼리슴 인터내셔널은 활동을 이어갔고 오늘날까지 존속한다. 1958년 열 번째 대회에서 스웨덴 SAC가 지방선거 출마를 위한 정관 개정 실패 등으로 이탈했다. 21세기 들어 IWA는 내부 위기를 겪어 2016년 스페인 CNT, 이탈리아 USI, 독일 FAU를 제명했고, 제명된 조직들은 2018년 국제노동총연맹(ICL-CIT, Confederación Internacional del Trabajo)이라는 새 국제조직을 결성했다.

구별

IWA는 코민테른이 1921년 모스크바에서 창설한 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 RILU)과 구별된다. 프로핀테른은 코민테른의 노동조합 활동 조정을 목적으로 세워진 코민테른의 노동조합 부문이었다. 프로핀테른 창설에 참여한 생디칼리슴 성향 대표들(미국 IWW의 '빅 빌' 헤이우드 등)은 이 조직이 코민테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것을 요구했으나 다수파에 밀려 '프로핀테른과 코민테른의 최대한 긴밀한 연결'을 골자로 한 결의가 채택되었다. 코민테른은 프로핀테른을 통해 생디칼리스트들을 가입시키려 했으나, 각국 생디칼리슴 조직은 정치 운동(공산주의)이 주도하는 노동조합 인터내셔널에 얽히기를 거부해 가입하지 않았다.

아나르코생디칼리슴은 다른 생디칼리슴 조류와 구별된다. 정치 이론과 거리를 두는 '중립적' 혁명적 생디칼리슴,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받은 대니얼 드 레온의 산업조합주의, 뱅가드주의·신화 창조를 옹호한 조르주 소렐의 권위주의적 생디칼리슴과 다르다. 또한 아나르코생디칼리슴은 산업화와 조직화에 우호적이라는 점에서, 소규모 분산 단위를 이상으로 보는 다른 아나키즘 조류와도 구별된다. 아나르코생디칼리슴의 사상적 기원은 제1인터내셔널(IWMA)의 반권위주의 분파와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의 실천이며, 1907년 암스테르담 국제 아나키스트 대회 이후 하나의 고유한 조류로 정립되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iwa-ait.org founding congress in Berlin, dates, delegates and participating unions
  2. iwa-ait.org the 1922 refounding and anarcho-syndicalist lineage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영문)
  6. iwa-ait.org
  7. 위키백과 (영문)
  8. iwa-ait.org
  9.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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