Бадаевские склады · 1914–1941 (식량창고로서)

바다예프 식량창고

Badayev Warehouses

레닌그라드 남부 모스콥스키 구 키옙스카야 가 5번지에 있던 철도 화물역과 창고, 화물 전차 선로를 갖춘 대규모 물류·식량 기지 단지이다. 1914년 1급 상인 S. I. 라스테랴예프가 넓은 부지에 세운 이 단지는 1915년 페트로그라드에서 두 번째 화물 전차 노선이 부설되면서 철도 화차와 전차 사이의 환적 거점이 되었다. 신경제정책 이후 도시 내 물자 흐름의 재편 속에서 식량 비축 기지로 전환되었고, 북부 주 식량 인민위원을 지낸 볼셰비키 A. E. 바다예프의 이름이 그 전환의 간접적 표지로 붙었다. 1941년 9월 8일과 10일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소이탄 280발이 떨어져 목조 창고 38동과 다른 구조물 11동이 불탔고, 공식 발표된 기록에 따르면 밀가루 3,000톤과 설탕 2,500톤이 소실되었다.

상세

기원과 초기 기능

단지는 1914년 1급 상인 S. I. 라스테랴예프가 페트로그라드의 자발칸스키 대로 동쪽, 노보데비치 묘지와 수도원 뒤편의 27헥타르 부지에 열었다. 사업 승인 시기와 착공 시점, 자금 출처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15년에는 이 땅에 하루 최대 화차 150량의 장작을 하역할 수 있는 나발로치나야 역이 개설되었고, 자발칸스키 대로에서 창고로 이어지는 전용 시 화물 전차 노선이 부설되었다. 이는 페트로그라드에서 두 번째로 놓인 화물 전차 노선으로, 화차에서 전차로 화물을 옮겨 화차 유휴 시간과 창고 용량을 절약할 수 있게 했다. 1916년 당시 기록은 라스테랴예프의 땅에 승강장을 갖춘 대형 임시 목조 창고 34동과 사설 보조 화물역이 있었으며, 수도 소규모 도매상들을 상대로 운영되었다고 전한다.

초기 단지는 화물 특화가 뚜렷하지 않은 일반 잡화 물류 단지였고 페트로그라드의 다른 역 창고들과 경쟁했다. 식량 비축이라는 기능은 1914년의 본래 목적이 아니라 신경제정책 이후에 형성된 것이다.

혁명과 신경제정책 시기

10월 혁명 이후에도 이 기반 시설은 여러 범주의 화물을 계속 처리했다. 1918~1919년 위기 시기 페트로그라드의 대부분 기업이 문을 닫고 인구가 몇 배로 줄었을 때, 거의 멈추지 않은 몇 안 되는 업무 분야였던 시 화물 전차는 마차 운송의 부족을 메웠다. 라스테랴예프 자신의 체르니고프스카야 11번지 산탄 주조 공장은 1918년 국유화되었고 신경제정책 시기에는 국영 산탄 주조 공장 '오호트니크'로 임대되었다. 이 일대는 순수한 창고업만이 아니라 혼합된 산업 단지의 성격을 지녔다.

신경제정책이 끝난 뒤 사회주의적 산업 재편에 따른 도시 내 물자 흐름의 재구성과 레닌그라드 교통 결절점의 성장 속에서 이 단지는 식량 저장 기지로 전환되었다. 볼셰비키 A. E. 바다예프의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러한 용도 변경의 간접적 표지로 해석된다. '바다예프 창고'라는 이름은 1929년에 작성되어 1935년에 인쇄된 도시 지도와 늦어도 1937년의 레닌그라드 전화번호부에 나타난다. 1923년에는 이 일대 전체가 여전히 라스테랴예보 역으로 표기되었고, 오늘날 이 자리의 철도역 이름은 바다옙스카야이다.

봉쇄 전야와 1941년 화재

전쟁 직전 이 단지는 32헥타르를 차지한 레닌그라드의 주요 식량 기지였다. 그러나 완전히 적재된 상태가 아니었고 상품이 짧은 시간 머물다 다시 빠져나갔다. 즉 최후의 비축고라기보다 중계 결절점이었다. 식량을 실은 마지막 열차는 1941년 8월 27일 레닌그라드에 들어왔고, 9월 8일 추축국이 봉쇄를 시작했다.

1941년 9월 8일과 10일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창고 구역에 소이탄 280발이 떨어졌다. 목조 창고(pakgauz) 38동과 다른 구조물 11동이 불탔고, 공식 발표된 기록에 따르면 밀가루 3,000톤과 설탕 2,500톤이 소실되었다. 1941년 9월 8일자 소방대 작전 보고서는 키옙스카야 가 5번지를 모스콥스키 구 공습의 중심으로 기록하며 소이탄 280발, 19시 05분 화재 발견, 19시 10분 부대 투입, 23시 35분 진화 완료, 도 소방대 52개 부서와 시설 소방대 14개 팀 동원을 남겼다.

화재가 진화된 뒤 재에서 불탄 밀가루와 물에 젖은 밀가루 최대 1,000톤, 불탄 설탕 최대 900톤을 수습해 도시의 식품 기업들이 나중에 가공했다. 이는 전면적 손실이라기보다 복구의 기록이다.

화재는 레닌그라드 주민의 기억에 1941~1942년 기근의 시작 원인으로 남았다. 당시 시행되던 배급 기준으로 사흘분 비축량만 있었다는 설명도 있는데, 이는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설이며, 비스킷과 과자 등 다른 물품도 알 수 없는 양이 소실되었다.

기근과의 관계에 대한 상반된 해석

화재가 기근에 미친 영향은 사료마다 다르게 평가된다. 19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백과사전은 바다예프 창고 화재가 1941~1942년 기근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설명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며, 남은 물자는 포격과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후 도시 전역에 분산되었다고 적는다. 이 사전은 소실 규모를 구조물 41동, 밀가루 3천 톤과 설탕 약 2,500톤으로 제시하며 이를 밀가루 하루반나절분, 설탕 사흘분 소비량이라고 부른다.

현대 역사가들도 창고 내용물이 전부 소실되었기 때문에 기근이 일어났다는 주장을 일정한 과장으로 다룬다. 여러 판본에 따르면 화재로 소실된 밀가루와 설탕은 며칠분에서 한 달분에 해당하며, 레닌그라드는 애초에 대규모 비축분을 갖지 않았고 전쟁 전부터 수레에서 바로 내리는 방식으로 공급되었다.

정치적 책임 문제도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화재가 기근의 정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판본은 대규모 폭격으로 인한 소실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이러한 식량 비축분을 제때 분산하지 않은 레닌그라드 당 지도부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는 것이다. 분산 능력은 있었다. 92개의 대기업이 대피하면서 장비 7만 대가 빠져나가 수백 개의 빈 작업장이 남아 있었다. 문헌은 1941년 6월 22일 레닌그라드 내무인민위원부 지도부 작전 참모부의 첫 회의에서 경제범죄 담당 부서장 A. S. 드랴즈고프가 식량 비축분을 도시의 작은 창고들에 분산할 것을 제안했고, 그랬다면 일격에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이는 특정 사료에 기록된 주장이며 확정된 사실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소실량 자체도 논쟁적이다. 2024년 베체르니 피테르부르크의 역사가·박물관 연구자에 근거한 기사는 소실량을 밀가루 3,000톤과 설탕 700톤으로 제시한다. 이는 위키백과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백과사전, ITMO.NEWS가 전하는 설탕 2,500톤과 충돌하며 같은 기사의 '바다예프 흙' 관련 서술과도 어긋난다. 수치는 출처와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단 흙'과 여타 용어

불탄 자리에서는 녹아내린 설탕에 젖은 흙을 두고 '바다예프 흙', '단 흙'이라는 전시 레닌그라드 용어가 생겨났다. 굶주린 주민들은 이 흙을 파내 먹었고, 신문지에 싸여 벼룩시장에서 '바다예프 제품'으로 유통되었다. 페테르부르크 사전은 '바다옙스카야 제믈랴'를 불탄 창고 일대에서 녹은 설탕에 젖은 단 흙을 이르던 봉쇄기 명칭으로 기록하며, 이를 큰돈을 주고 시장에서 사서 먹었다고 전하고 동의어인 '단 흙', '바다예프 제품', '레닌그라드 치즈'를 함께 제시한다. 다만 '바라홀카', '톨초크' 같은 러시아 구어 시장 용어는 중고품 시장을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고 이 단지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잘 알려진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벼룩시장은 1990년부터 우델나야 역에서 형성되었다.

재건과 이후

화재 이후 창고는 재건되어 도시 도매·식량 기지로 계속 기능했다(이후 도매 기지, 유리 용기 전문 기지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45년부터 1970년대 사이 바다예프 창고는 다시 지어졌고, 1965년 레닌그라드 도시 안내서는 키옙스카야 5번지에 시 식품거래 관리국의 '바다예프 도매 기지'를 기재하며, 이 일대에는 레닌그라드 간 도매 기지도 있었다. 1990년대에는 유리 용기 전문 기지가 들어섰고 모든 구조물이 새로 지어졌다.

오늘날 서 있는 건물이 1914년의 목조 창고만은 아니다. 2021년 기준 키옙스카야 5번지 주소의 50여 동 가운데 1912~1917년 구조물 6동과 1928~1933년 구조물 6동이 남아 있으며, 목조 단지는 1945년부터 재건되어 1970년대 중반까지 증축되었다.

2006년 11월, 2007년 2월, 2008년 12월에 이어 2010년 5월 20일 키옙스카야 5번지에서 다시 화재가 났다. 2010년 화재는 면적 4.5천 제곱미터의 3등급 화재로 비식품, 특히 가구가 탔으며 네프스키 대로에서도 연기가 보였다. 같은 해 12월 30일 보험사 레소-가란티야는 화재로 재산을 잃은 피보험자에게 3,080만 루블을 지급했다.

기억과 사례

9월 8일 화재는 봉쇄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념된다. 문헌은 봉쇄기 바다예프 빵 공장의 실험실을 기록한다. 생화학자 미하일 크냐기니체프가 이끌고 기술자 파벨 플로트니코프와 미생물학자 지나이다 슈미트가 참여한 이 실험실은 검은 호밀가루, 마디풀 종자 가루, 나문재, 자작나무 껍질, 밀가루 먼지, 식물 펄프, 대두박, 수화셀룰로스를 이용한 빵 대체물을 개발했다. 26톤이 넘는 첨가물로 빵 50톤을 추가로 얻었다.

증언도 남아 있다. 당시 인근 군사학교에 있던 니콜라이 니쿨린은 1941년 9월 공습과 타오르는 '바다예프 식량창고'의 연기를 서술했고, 훗날 그것이 백만 굶주린 레닌그라드 주민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이해했다고 전한다. 봉쇄 생존자 안토니나 바실리예브나 바빌로노바의 증언도 인용된다.

전시 식량 정책의 맥락도 필요하다. 1941년 7월 18일 레닌그라드에서 빵·밀가루·설탕·고기에 대한 배급 카드가 도입되었고, 9월 1일부터 식품 자유 판매가 금지되었으며, 9월 2일 규정량이 처음 삭감되었다. 11월 20일부터 노동자는 빵 250그램, 사무직과 부양가족, 12세 미만 아동은 125그램을 받았다.

화재는 예술에도 남았다. 고로드니츠키의 설탕이 타는 장면을 노래한 구절이 페테르부르크 언론에 인용되며, 비소츠키의 봉쇄 노래 '나는 레닌그라드 봉쇄 속에서 자랐다'에도 이 단지가 나온다. 일반화된 대중 서술도 있다. 한 미국 대중 역사 페이지는 봉쇄 시작을 1941년 9월 8일로 적고 '독일의 공습이 레닌그라드의 부족한 식량 공급의 상당 부분을 담고 있던 창고에 불을 질렀다'고 기록하지만 장소를 명시하지 않으며, 봉쇄 기간을 872일, 사망자를 약 백만 명으로 제시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Russian Wikipedia — Бадаевские склады: comprehensive history from 1914 construction through the 8 September 1941 bombing, including archival data on 3,000 tons of flour and 2,500 tons of sugar destroyed, and post-fire recovery of burnt goods.
  2. 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ие ведомости (22 Jan 2025) — «Сладкая земля»: confirms the 32-hectare site was Leningrad's main prewar food base, the German targeted incendiary bombing, and the post-fire phenomenon of 'sweet earth' collected by starving residents.
  3. ITMO.NEWS (5 May 2023) — confirms 3,000 tons of flour and 2,500 tons of sugar destroyed on 8 September 1941, and that remaining stocks could only last about a month.
  4. History.com — Siege of Leningrad begins: confirms that on 8 September 1941, 'a German air bombardment set fire to warehouses containing a large part of Leningrad's scant food supply.'
  5. 위키백과 (러시아어)
  6. sankt_peterburg.academic.ru
  7. citywalls.ru
  8. spbvedomosti.ru
  9. news.itmo.ru
  10. interfax.ru
  11. peterburger_lexikon.academic.ru
  12. vecherka-spb.ru
  13. 위키백과 (러시아어)
  14. h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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