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pereen taistelu · 1918

탐페레 전투

Battle of Tampere

핀란드 내전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1918년 3월 중순 만네르헤임이 지휘한 백군이 공세를 시작해 3월 23일 노동운동의 중심 도시 탐페레를 포위했고, 시가전 끝에 4월 6일 함락했다. 백군 승리는 내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항복한 적위대원 처형과 1만 명이 넘는 포로 수용이 뒤따랐다.

상세

교외를 합쳐 인구 약 6만 명인 탐페레는 핀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공업화된 도시로, 노동운동의 수도로 여겨졌다. 적색 정부는 헬싱키에 있었지만 철도와 많은 노동자 인구 덕에 탐페레가 적위대의 주 근거지가 되었고, 탐페레 적위대는 여성 300명을 포함해 약 6,000명이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백군은 3월 15일(핀란드어 출처는 16일) 공세를 시작해 랭키포흐야와 오리베시에서 적색 전선을 무너뜨렸다. 약 1만 5천 명의 적위대가 탐페레로 물러나 끝까지 지키기로 했고, 3월 23일 백군 1만 7천 명이 도시를 포위했다. 에이노 라햐는 남쪽 렘팰래에서 3,500명으로 반격했다. 3월 28일 「피의 목요일」 공격에서 예거 장교가 이끈 징집병 부대와 스웨덴 여단이 큰 손실을 입었고, 적색 지휘관 후고 살멜라가 사고로 죽어 베르네르 레흐티매키가 뒤를 이었다. 이후 닷새 동안 포격으로 노동자 지구 탐멜라와 퀴탤래가 거의 파괴되었다.

4월 3일 새벽 백군의 결정적 공세는 집집마다 싸우며 동쪽 노동자 지구를 차지했고, 4일 탐메르코스키강을 건넜다. 5일 시청이 마지막 거점으로 무너졌고, 그날 저녁 레흐티매키와 알리 알토넨 등 적색 무리가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 빠져나갔다. 4월 6일 아침 퓌니키 탑에 백기가 올랐다. 영어 출처는 전사자를 백군 600~820명, 적군 600~1,000명으로 추산하고, 전투 뒤 적색 약 1,000명과 러시아인 200명이 처형되었다고 적는다. 핀란드어 출처는 적색 약 2,000명이 죽었고 그 절반이 처형된 포로였으며 백색은 약 700명이 죽었다고 본다. 1만 명이 넘는 포로가 중앙광장에 거의 하루 동안 세워졌다가 칼레반캉가스 수용소로 옮겨졌고, 다섯 달 동안 1,228명이 처형과 병, 굶주림으로 죽었다. 핀란드어 출처는 참가 병력으로 보아 북유럽 전쟁사에서 그때까지 가장 큰 전투였다고 쓴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fi.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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