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érémonie du Bois-Caïman · 1791

부아 카이망 집회

Bois Caïman ceremony

1791년 8월 14일 밤 카프프랑세 근교 숲에서 노예 약 200명이 모여 북부 평원의 봉기를 계획했다고 전해지는 보두 의식이자 모의. 사제 뒤티 부크만과 여사제 세실 파티망이 주재하고 검은 돼지를 제물로 바쳐 맹세했다고 하며, 일주일 뒤 8월 21~22일의 노예 봉기, 곧 아이티 혁명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당대의 직접 기록은 없고 1814년에야 문헌에 나타나 실재 여부가 논쟁거리다.

상세

백인 농장주들은 보두 의식을 해롭지 않은 사교 모임으로 여겨 허용했고, 노예들은 그 자리를 조직의 기회로 삼았다. 전해지는 바로는 1791년 8월 14일 밤 카프프랑세 근교 슈아죌 농장의 「악어 숲」(부아 카이망)에 인근 농장의 대표 약 200명이 모였고, 사제 부크만과 여사제 파티망이 봉기를 준비하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이어 온 모임의 마지막 회합을 주재했다. 장프랑수아, 비아수, 장노가 참석했다고 하며, 투생 루베르튀르 전기는 같은 날 모른루주의 농장에서 노예 감독·크레올·해방 노예 200명이 모여 비아수를 지도자로 뽑았고 투생이 그를 추천했다고 적는다. 첫 기록은 1814년 백인 식민자 앙투안 달마스의 『생도맹그 혁명사』로, 「검은 돼지 한 마리가 마법의 힘을 믿는 노예들에게 둘러싸여 전능한 정령에게 제물로 바쳐졌고, 흑인들은 그 피를 이마에 발랐다고 믿었으며, 그 털을 가지면 무적이 된다고 믿었다」고 썼다. 1824년 에라르 뒤멜이 현지에서 구술을 모아 기록한 부크만의 기도는 「백인들의 신은 그들을 범죄로 몰지만 우리의 신은 선행을 원한다. 그러나 그토록 선한 신이 우리에게 복수를 명한다. 우리의 눈물에 목마른 백인들의 신의 형상을 내던지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말하는 자유에 귀 기울이라」고 되어 있으나, 뒤멜은 부크만의 이름을 적지 않았고 그 글은 그리스·로마 고전을 끌어온 각색으로 보인다. 의식이 있은 지 일주일 뒤인 8월 21~22일 밤 북부 평원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레옹프랑수아 오프만 같은 비평가는 이 서사가 봉기 세력을 묶는 동기 부여의 구실을 했을 뿐 실제로 일어났다는 근거는 없다고 본다. 반면 예테보리 대학의 마르켈 튈레포르스는 「부아 카이망 의식은 아이티의 발생 자체와 이어지는 아이티 민족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평가하며, 이 의식은 민족주의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억압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쓰여 왔다. 1970년대 뿌리 음악은 뒤발리에 독재에 맞선 저항을 조상들의 부아 카이망에 빗댔다. 1990년대 미국 개신교 선교의 영향 아래 일부 복음주의자는 이 의식을 「사탄과의 피의 계약」으로 다시 해석했고, 2010년 아이티 지진 뒤 팻 로버트슨이 아이티인이 「악마와 계약」했기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부크만은 1791년 11월 7일 프랑스군에게 죽었고, 아이티인들은 그를 로아(수호 정령)의 신전에 모셨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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