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gy-budapesti Központi Munkástanács (NBKMT) · 1956.11.14–12

대부다페스트 중앙노동자평의회

Central Workers' Council of Greater Budapest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소련군에 진압된 뒤인 11월 14일 부다페스트 공장 노동자평의회 대표들이 세운 기구. 부다페스트 지역 모든 공장 노동자의 이름으로 카다르 정부와 협상하고 파업과 작업 재개를 결정할 권한을 내세웠다.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로 지키겠다고 하면서 너지 임레의 복귀, 소련군 철수, 일당제 폐지와 자유선거를 요구했다. 총파업으로 한동안 실질적인 대항 권력 노릇을 했으나, 12월 지도부가 체포되고 정부가 해산을 명령했다.

상세

노동자평의회 운동

1956년 혁명 동안 헝가리 공장마다 노동자평의회가 생겨 근로인민당(공산당)이 위에서 지휘하던 조직을 대신했다. 첫 평의회는 10월 24일 부다페스트 우이페슈트의 통합 전구 공장에서 섰다. 11월 4일 소련군이 총공세에 나서자 평의회들은 무장 저항에도 참여했고, 체펠 같은 노동자 지구는 강하게 저항했다. 진압 뒤 다른 저항 수단이 막히자 평의회가 정치적 역할을 떠맡았다. 라츠 샨도르의 회고에 따르면 11월 8일 지구 회의에서 「지금까지는 너지 임레를 믿고 정치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이제 노동자평의회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11월 14일 결의

벌리 샨도르의 제안으로 11월 14일 「아래로부터의 발의에 따라」 대부다페스트 중앙노동자평의회가 세워졌다. 창립 결의는 엄격히 사회주의 원칙에 서서 생산 단위를 사회적 소유로 여기며 이를 지키려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인민의 신뢰를 받는 너지 임레가 정부를 이끌 것, 국가보위청(ÁVH) 대원을 새 치안 기구에 받아들이지 말 것, 소련군을 되도록 빨리 철수시킬 것, 일당제를 없애고 사회주의의 토대 위에 선 정당만 허용할 것, 짧은 기한 안에 자유선거를 치르고 모든 정당을 공장에서 내보낼 것을 요구했다. 답을 받을 때까지 주민 생활에 꼭 필요한 공장만 돌리겠다고 했다. 의장은 11월 16일부터 벨로이안니스 공장 출신의 라츠 샨도르가 맡았다.

카다르 정부와의 대결

평의회는 카다르의 혁명 노농 정부에게 매우 불편한 상대였다. 그 존재 자체가 권력이 노동자와 떨어져 있음을 보여 주었고, 평의회가 있는 곳에서는 공산당 조직이 다시 서지 못했다. 평의회는 48시간 총파업을 선언하고 너지의 석방을 요구했으며, 라츠에 따르면 어프로 언털이 장관 자리 셋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11월 21일 전국노동자평의회 창립은 탱크로 저지되었다. 12월 11일 카다르는 라츠와 벌리를 의사당으로 불러 협상하는 척하며 체포했고, 정부는 평의회를 해산했다. 1957년 8월 사회주의노동자당 정치국은 노동자평의회를 모두 없애기로 했다. 1958년 라츠는 종신형, 벌리는 12년형을 받았고 두 사람은 1963년 사면으로 풀려났다. 평의회의 정치적 역할은 뒤에 폴란드 연대노조와 견주어진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mek.oszk.hu
  2. hu.wikipedia.org
  3. hu.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