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ubblica Cisalpina · 1797–1802

치살피나 공화국

Cisalpine Republic

1797년부터 1802년까지 이탈리아 북부에 존재한 프랑스의 자매공화국이자 괴뢰 정권이다. 국명은 고대 로마의 '갈리아 키살피나'(알프스 이쪽의 갈리아)에서 유래했고, 수도는 밀라노였다. 행정부는 프랑스를 본떠 5인 총재정부를 두었으며, 실질적 최고 권한은 프랑스군 사령관에게 있었다.

상세

성립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6~1797년 이탈리아 원정에서 오스트리아·사르데냐군과 싸워 두각을 드러냈고, 점령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1796년 포 강 남쪽의 치스파다나 공화국과 북쪽의 트란스파다나 공화국을 세웠다. 1797년 5월 19일 모데나 영토가 트란스파다나로 넘어갔고, 같은 해 6월 29일(공화력 12 메시도르) 칙령으로 치살피나 공화국의 성립이 선포되었다. 헌법은 7월 7일(20 메시도르) 공표되어 영토를 열한 개 도(Department)로 나누었다.

이탈리아어 기록은 1797년 6월 29일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1796~1797)으로 국가를 수립했다고 서술한다. 밀라노 국가, 치스파다나 공화국(모데나·마사 공국, 볼로냐·페라라 레가치온), 베네치아령 베르가모·브레시아·크레마를 아울렀고, 1797년 면적 42,500㎢에 인구 324만 명이 스물 개 도로 나뉘어 있었다.

헌법과 통치

1797년 7월 8일 채택된 제1헌법은 1795년 프랑스 헌법을 따랐다. 5인 총재정부와 두 원(법률을 승인하는 40~60명의 원로원, 법률을 제안하는 80~120명의 대평의회), 지주·유산가로 제한된 선거인단, 프랑스 혁명력을 채택했고, 최고 권한은 프랑스군 사령관에게 남았다.

1798년 8월 31일(공화력 14 프뤽티도르) 프랑스 대사 트루베가 총재정부를 해산하고 다음 날 행정권을 강화한 헌법을 공포해 도를 스물에서 열한 개로, 지방 총재정부를 5인에서 3인으로 줄였다. 이탈리아어 기록은 제2헌법이 1798년 9월 1일 전비 절감을 겨냥한 쿠데타로 부과되었고 원로원(안치아니)과 주니오리 원을 두었다고 서술한다. 두 번째 헌법은 선거인을 주민 400명당 1명으로, 주니오리 원을 80명, 원로원을 40명으로 줄이고 지방 행정을 유지할 인구 하한을 1만 명으로 올렸다.

프랑스에 대한 종속

캄포포르미오 조약(1797년 10월 17일)으로 오스트리아는 치살피나 공화국을 승인했고, 그 대가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잔여 영토를 얻었다.

공화국은 형식상 프랑스와 동맹한 독립국이었으나 동맹 조약은 실질적 예속을 규정했다. 프랑스의 경찰 통제, 공화국이 비용을 대는 2만 5천 명의 프랑스군 주둔, 나폴레옹의 원정에 동원될 자체 군대였다. 자체 군대 규모는 출처마다 다르게 전한다. 영어 기록은 3만 5천 명, 이탈리아어 기록은 3만 명으로 적는다. 1798년 3월 4일 대평의회가 비준을 미루고 원로원이 계속 조약을 거부하자 베르티에가 군사정부 수립을 위협했고, 브륀 장군이 의원들을 파면한 끝에 6월 8일 조약이 서명되었다. 이탈리아어 기록은 조약을 1798년 2월 21일(공화력 6년 8 벤토조)로 적고, 원로원이 전비 부담 불가를 이유로 조약을 거부했다고 서술한다.

영토 확장과 국명 변경

발텔리나가 스위스 삼동맹에서 이탈한 뒤 합병되었고(1797년 10월 22일 발표), 1801년 2월 9일 뤼네빌 조약 이후 신성 로마 제국과의 국경이 아디제 강으로 옮겨졌다. 노바라 합병으로 서쪽 국경이 티치노에서 세시아로 이동했고, 5월 13일 영토가 열두 개 도로 나뉘었다.

스위스와의 관계에서 치살피나의 패권적 요구는 이탈리아어·문화상 이탈리아 민족국가를 지향했으나 발텔리나 합병에 그쳤다. 1798년 2월 15일 캄피오네 디탈리아에서 시작된 루가노 합병 기도는 루가노 의용군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영어 기록도 1797년의 루가노 기습 시도와 1798년의 쿠데타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고 서술한다.

1801년 11월 12일 리옹에서 치살피나 임시 콘술타가 소집되어 1802년 1월 국명을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바꾸기로 결정했고, 나폴레옹이 1월 24일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며 1월 26일 유력자들이 이탈리아 공화국을 선포했다. 새 헌정 정부는 2월 10일 밀라노에서 공포되었다. 이탈리아어 기록은 1802년 1월 26일 리옹 콘술타에서 밀라노를 수도로,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프란체스코 멜치 다릴을 부통령으로 하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성립이 확정되었다고 적는다. 이탈리아 공화국은 1805년 3월 18일 나폴레옹이 철관을 쓰고 이탈리아 왕을 자처하며 이탈리아 왕국을 선포하면서 끝났다.

오스트리아·러시아 점령과 복고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중 1799년 4월 카사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한 뒤 공화국은 수보로프의 러시아·오스트리아군에 점령되어 임시 행정부가 들어섰다. 점령군은 1800년 5월 30일, 마렌고 전투를 며칠 앞두고 물러났고, 나폴레옹은 6월 4일 치살피나 공화국을 복원해 9인 비상위원회와 입법 콘술타를 임명했으며, 이는 뒤에 소마리바·루가·비스콘티 3인 정부위원회로 집중되었다.

이탈리아어 기록은 1799년 4월 공화국이 해산되었고, 롬바르디아가 페데리코 코카스텔리 백작이 이끄는 제국위원회에 맡겨져 공화정 3년 동안 압수·매각된 재산을 귀족과 가톨릭 교회에 반환했으며, 경찰이 지목한 자코뱅파와 반가톨릭 인사들을 국왕위원재판위원회에서 대역죄로 약식 재판에 회부하고 공화정 자치체를 폐지했다고 서술한다. 공화국은 1800년 이탈리아 원정으로 재건되었다.

상징

치살피나 삼색기는 트란스파다나 공화국의 것을 이어받았고 현 이탈리아 공화국의 삼색기와 같다. 기들은 레조 에밀리아 삼색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치살피나 삼색기는 프랑스 기와 너무 비슷하고 너무 혁명적으로 여겨져 1802년 이탈리아 공화국 시기에 수정되었다.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한국어)
  3. it.wikipedia.org
  4. 위키백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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