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омиссар · 1967 (1967년 제작, 금지 끝에 1987년 첫 공개, 1988년 복원 개봉)

콤미사르 (영화)

Commissar (film)

알렉산드르 아스콜도프가 1967년에 만든 소련 영화. 내전 중 임신한 여성 콤미사르가 가난한 유대인 대장장이 집에 머물다 아이를 맡기고 전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바실리 그로스만의 단편이 원작이다. 유대인 묘사를 이유로 금지되어 20년 동안 묻혔고, 페레스트로이카 때 영화제 기자회견장의 항의로 세상에 나왔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1920~1921년 무렵, 붉은 군대 기병대의 콤미사르 클라브디야 바빌로바가 탈영병 예멜린의 처형을 지휘한다. 말에서 내려온 적이 없을 듯한 이 군인에게 임신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질겁하지만 아이의 아버지 키릴은 이미 죽었고, 부대는 그를 도시의 가난한 유대인 대장장이 에핌 마가자니크의 집에 맡긴다. 아내 마리야, 장모, 여섯 아이가 사는 좁은 집이다.

처음엔 양쪽 다 달갑지 않다. 그러나 마가자니크 가족은 배급 빵을 나누고 옷을 지어 주며 해산을 돕고, 아이는 아버지 이름을 따 키릴이 된다. 콤미사르는 차츰 녹아 어머니가 된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포그롬 놀이”를 하며 누나를 “유대인”으로 삼는 장면도 있다. 전선이 다가오고 붉은 군대가 물러나자 유대인들은 포그롬을 기다린다. 지하실에 숨어 에핌이 아이들과 춤을 추는 것을 보던 바빌로바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진다. 노란 별을 단 유대인들, 곧 홀로코스트의 환영이다. 그는 아기를 마가자니크 집에 두고 전선으로 달려간다.

왜 금지되었나?

혁명 50주년 기념작으로 제안된 대본은 승인되었으나, 국가영화위원회(고스키노)는 수정을 요구했다. 위원장 알렉세이 로마노프는 인물의 민족을 바꾸고 홀로코스트 장면을 빼면 개봉할 수 있다고 사적으로 말했고, 아스콜도프는 거절했다. 그는 카메네츠-포돌스키에서 나치가 실제로 유대인을 학살한 자리에서 이 장면을 찍었다. 현지 유대인들이 촬영을 꺼려서 우크라이나 공산당에 편지를 보내 엑스트라를 구해야 했다.

편집은 6일 전쟁이 끝날 무렵과 겹쳤고, 1967년 12월 29일 고스키노 회의가 상영 금지를 결정했다. 이스라엘 야드 바솀 연구소는 문서에 나타난 사유를 전한다. “유대인 에핌 마가자니크와 그 가족의 긍정적 형상, 그리고 노란 별을 단 유대인들의 춤, 곧 유럽 유대인 카타스트로프를 명백히 암시하는 대목”이다. 로마노프는 도리어 유대인 위원들이 이 영화를 반유대주의적이라 보았다고 주장했다. 1968년 7월 금지가 확정되었고, 로마노프의 7월 28일 명령으로 모든 자료가 국가영화보존소로 넘어갔다. 세르게이 게라시모프와 미하일 롬의 지지도 소용없었다.

아스콜도프는 일자리를 잃었고, 영어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기생충”으로 몰려 당에서 쫓겨났으며 모스크바에서 추방되고 극영화 연출을 금지당했다. 다만 러시아어 자료는 그가 1981년부터 콘서트홀 로시야의 총감독을 지내다 1985년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해임, 출당되었다고 적어, 출당 시기가 엇갈린다. 필름은 파기되었다고 들었는데, 파기를 막은 것이 아내라는 그의 주장과 게라시모프라는 설이 함께 있다.

어떻게 다시 세상에 나왔나?

1986년 제5차 소비에트 영화인대회 뒤 영화인동맹이 나서고 당국도 공개를 지시했지만, 고스키노의 필리프 예르마시 등은 막아섰다. 1987년 7월 9일 제15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엘렘 클리모프가 금지 영화는 모두 풀렸다고 선언하자, 객석의 아스콜도프가 마이크를 잡고 《콤미사르》는 여전히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그 자리에 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고르바초프를 만나 영화제 심사위원단을 대신해 공개를 요청했고, 7월 11일 살아남은 프린트가 상영되었다. 1988년 모스필름이 복원을 마쳐,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첫해 관객은 350만 명을 넘었다.

아스콜도프가 만든 극영화는 이 한 편뿐이다. 그는 2018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왜 이 영화가 소중한가?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가 들리는 드문 소련 영화이고, 클레즈머풍 음악은 알프레트 시니트케가 맡았다. 여주인공은 노나 모르듀코바, 에핌은 롤란 비코프가 맡았고, 바실리 슉신이 연대장으로 나온다. 연구자 데니즈 영블러드는 유대인 인물이 주요하고 호감 가는 역을 맡은 첫 러시아 영화라고 본다. 어린 아스콜도프는 부모가 체포된 뒤 그를 숨겨 준 유대인 가족을 바비 야르에서 잃었고, 이 영화를 그 가족에게 바쳤다고 말했다.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가 게르셴손은 이 영화를 가장 유대적인 소련 영화의 하나로 평가했지만, 역사가 빅토리아 히테레르는 비유대인 관객을 겨냥해 원작의 하임-아브람과 베일라를 에핌과 마리야로 바꾸고, 신약의 상징과 많은 교회, 폐허가 된 회당 하나를 넣어 기독교의 우위를 암시했다고 비판한다. 에핌의 묘사가 혁명 전 문학의 고정관념을 따랐다는 지적도 있다.

원작과 어떻게 다른가?

바탕은 그로스만이 1934년 《문학 신문》에 실은 단편 「베르디체프 시에서」다. 원작의 주인공은 어린 사관생도들의 행렬을 보고 아이를 두고 합류한다. 홀로코스트 환영은 영화가 더한 것이다. 아스콜도프는 이사크 바벨의 『기병대』에서도 소재를 끌어왔다. 안경을 쓴 연인 키릴이 그 화자 키릴 류토프를 떠올리게 하고, 에핌은 바벨의 인물 게달리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러시아어)
  4. 위키백과 (러시아어)
  5.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