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민족운동
Congolese National Movement
1958년 벨기에령 콩고에서 결성된 아프리카 민족주의 정당. 지역·종족 기반이 대부분이던 다른 정당과 달리 전국적 지지를 받았고, 파트리스 루뭄바가 이끌었다. 1959년 루뭄바파(MNC-L)와 칼론지파(MNC-K)로 갈라졌고, 1965년 모부투가 정당 활동을 금지한 뒤 망명지와 지하에서 분파들이 명맥을 이었다.
상세
콩고 민족운동은 1958년(러시아어 출처는 10월) 「합리적인 기간 안에」 독립을 이루려는 통일전선으로 결성되었다. 루뭄바·시릴 아둘라·조제프 일레오 등이 헌장에 서명했고, 조제프 카사부부는 너무 온건하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1959년 말 당원은 5만 8천 명이라고 주장했다.
당 안에서는 온건한 「에볼뤼에」와 급진적인 대중 당원이 대립했다. 1959년 분열로 다수파는 루뭄바파(MNC-L)가 되어 스탠리빌을 근거지로 삼았고, 소수파는 알베르 칼론지가 이끄는 칼론지파(MNC-K)가 되어 엘리자베스빌과 발루바족의 지지를 얻었다. 분열을 이끈 사람은 출처마다 다르게 적는다. 영어 출처는 1959년 7월 일레오가 연방주의 정당을 만들려 했다고 적고, 러시아어 출처는 아둘라가 칼론지파를 이끌었다고도, 일레오와 칼론지의 급진파가 떨어져 나갔다고도 적는다.
1960년 6월 첫 총선에서 루뭄바파가 최대 민족주의 세력이 되었고, 루뭄바는 카사부부의 아바코와 연립해 총리가 되었다. 콩고 위기 속에 9월 카사부부가 루뭄바를 해임했고, 루뭄바의 측근이던 조제프 모부투 대령이 그를 체포했다. 루뭄바는 카탕가로 이송되어 살해되었다. 1961년 3월 스탠리빌 대회는 크리스토프 그벤예를 지도자로 뽑았으나 지도권 다툼이 이어졌고, 1963년 10월 그벤예 파는 심바 반란을 조직한 민족해방평의회(CNL)에 참여했다.
1965년 11월 모부투가 권력을 잡고 정당 활동을 금지하면서 합법 활동은 1990년까지 끊겼다. 당은 망명지에서 다른 반모부투 세력과 손잡았고, 루뭄바의 아들 프랑수아 루뭄바가 루뭄바파 주류를 이끌었다. 1984년 3월 킨샤사 폭탄 공격은 당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1997년 모부투 정권이 무너진 뒤 여러 분파가 정치에 다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