диалектический материализм

변증법적 유물론

Dialectical Materialism

마르크스엥겔스가 헤겔의 변증법에서 방법을,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서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이어받아 세운 마르크스주의 철학. 세계를 의식 바깥에 실재하는 물질의 운동으로 보고, 사물을 고립된 고정물이 아니라 서로 연관된 채 발전하는 과정으로 파악하며, 발전의 원동력을 사물 내부의 모순에서 찾는다. 명칭은 1891년 플레하노프가 처음 썼고, 소련에서 국가 공인 철학이 되어 스탈린의 1938년 논문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 표준 정식화로 통용되었다.

상세

무엇을 주장하는 철학인가?

이름 그대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유물론'은 세계가 누군가의 관념이나 정신이 아니라 물질로 되어 있고, 의식은 그 물질이 고도로 조직된 형태(두뇌)의 산물이자 반영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세계는 원리상 인식 가능하며,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알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변증법'은 그 물질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다. 사물을 하나씩 떼어 놓고 고정된 것으로 다루는 사고방식(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태도)에 맞서, 모든 것을 연관 속에서, 생성과 소멸의 운동 속에서 본다. 작은 양적 변화가 쌓이다가 어느 지점에서 질적 비약으로 바뀌고(물이 100도에서 끓듯이), 그 운동을 밀고 가는 힘은 바깥이 아니라 사물 내부의 대립하는 경향들 사이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헤겔과 포이어바흐에게서 무엇을 가져왔나?

헤겔은 세계를 모순을 통해 스스로 전개되는 과정으로 그렸지만, 그 과정의 주체를 '절대이념'이라는 정신으로 놓았다. 마르크스는 이 변증법이 "신비한 껍질 속의 합리적 핵심"을 담고 있으며 물구나무선 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썼다.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관념론을 뒤집어 유물론을 복원했지만, 그의 유물론은 인간을 역사와 실천 바깥에서 바라보는 관조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두 사람에게서 각각 방법과 세계관을 취하되 양쪽의 한계를 잘라 냈고, 엥겔스가 『반뒤링론』과 『자연변증법』에서,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9)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다듬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합성어 자체는 마르크스 사후 플레하노프가 만들어 정착시킨 것이다.

소련에서는 어떻게 국가 철학이 되었나?

혁명 후 1920년대 소련 철학계는 변증법을 자연과학의 언어로 환원하려는 '기계론자'들과, 헤겔 연구를 앞세운 데보린 학파가 격렬하게 논쟁했다. 1931년 당 중앙이 개입해 양쪽을 모두 단죄하면서(기계론은 우편향, 데보린파는 '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 철학 논쟁은 당 노선의 문제가 되었다. 1938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소교정』이 나오고 그 제4장 2절인 스탈린의 논문이 모든 당원 교육과 대학 과정의 표준 교재가 되면서, '디아마트'는 교과 과목이자 국가 세계관으로 제도화되었다. 소련의 모든 대학생이 전공과 무관하게 이 과목을 이수했다.

스탈린의 정식화는 무엇이 특징인가?

스탈린의 논문은 변증법적 방법의 네 가지 주요 특징(보편적 연관, 운동과 발전,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이행, 내부 모순)과 철학적 유물론의 세 가지 주요 특징(세계의 물질성, 물질의 1차성과 의식의 2차성, 세계의 인식 가능성)을 번호 매긴 목록으로 정리했다. 명료한 대신 논쟁의 여지를 지운 정식화였다. 엥겔스가 변증법의 법칙으로 꼽았던 '부정의 부정'이 목록에서 빠진 것이 대표적으로, 옛 것 안에서 새 것이 자라나 다시 부정된다는 이 법칙이 왜 빠졌는지를 두고 후대 연구자들은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같은 문서가 한편으로는 철학을 문답서로 굳혔다는 비판을,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수천만 명에게 체계적 세계관 입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함께 받는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

스탈린 사후 소련 철학은 이 정식화의 틀 안에서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발트 일리옌코프의 『자본』 논리 연구나 비고츠키 심리학의 복권처럼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조적으로 밀고 간 흐름이 있었고, 반대로 리센코 사건처럼 철학적 언어가 과학 논쟁을 행정적으로 재단하는 데 동원된 오용의 역사도 있다. 서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체로 '디아마트'라는 소련식 체계와 거리를 두고 마르크스의 방법을 다르게 읽었으며, 이 갈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별도의 전통이 되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full text of the 1938 essay, the four features of the method and three of the materialism, the Short Course context
  2. 위키백과 (영문) Plekhanov's coinage, the Hegel and Feuerbach lineage, Engels's and Lenin's systematizations, the negation-of-the-negation omission
  3. 위키백과 (러시아어) the mechanist-Deborinite controversy, the 1931 party resolution, diamat as compulsory curriculum
  4. 위키백과 (영문) post-Stalin creative currents in Soviet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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