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갭
dollar gap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수지 위기로,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서 필수 수입품을 결제할 달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갭'이라는 말은 전후 미국의 수출 초과, 즉 능동적 무역수지 흑자가 낳은 달러 수요와 제한된 공급 사이의 차이를 뜻한다. 전쟁으로 유럽의 금·달러 보유고와 수출 능력이 파괴된 반면 미국은 세계 금 보유량의 70%를 축적하고 막대한 무역흑자를 냈다. 이 구조적 달러 부족은 마셜 플랜의 직접적 배경이 되었고, 1950년대 말 미국 국제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면서 달러 과잉 국면으로 바뀌었다.
상세
역사
달러 부족은 전후 유럽 국가들이 주로 겪은 문제로, 1944년부터 1960년까지의 시기로 잡힌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과 일본은 자국민을 먹여 살릴 물자를 생산하지 못했고 수출은 더욱 어려웠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 부채(대부분 미국에 대한 부채), 무역수지 적자, 국제수지 적자, 그리고 고갈된 금·달러 보유고가 겹쳤다. 1947년까지 미국은 세계 금 보유량의 70%를 축적했고, 영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에서 최대 채무국으로 전락했으며, 각국은 전비를 대느라 보유 금과 달러, 해외 투자의 대부분을 처분해 남은 보유고마저 바닥나고 있었다. 1946년에서 1951년 사이 미국은 무역흑자를 쌓아 유럽이 수출로 상쇄할 수 없는 대미 수입을 떠안게 했다. 이 격차는 달러를 만들어 다른 국가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메워졌으며, 이는 마셜 플랜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고 유럽결제동맹 같은 청산 기구도 그에 기여했다.
관련 항목
마셜 플랜(유럽부흥계획)은 1948년에 제정된 미국의 계획으로 17개 유럽 국가에 133억 달러를 이전했다. 주요 산업 강국에 더 많은 액수가 돌아간 것은 그들의 회복이 유럽 전체의 부흥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는 유럽결제동맹을 만들었고, 회원국들은 1950년 7월 1일 협정에 서명했다. 동맹은 월말까지 자금을 이체하지 않고 거래를 계산했으며, 유럽을 불가피한 양자 무역에서 다자 무역으로 옮겨 놓았고 차별적 무역 조치의 철폐를 의무화해 무역 자유화를 강제했다. 1950년 7월부터 1958년 12월까지 운영된 유럽결제동맹은 유럽통화협정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존재 기간에 유럽 국가들에서는 정부 허가 없이 통화 교환이 가능해졌고 무역 규모는 두 배 이상 늘었다. 달러 갭은 브렛턴우즈 체제의 교환성 틀 안에서 성립한 현상이다. 1944년 7월 1일부터 22일까지 열린 브렛턴우즈 회의는 각국이 자국 통화의 달러 교환성을 보장하고, 달러는 외국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해 금으로 교환되도록 요구했다. 세계 금의 3분의 2를 통제하던 미국은 체제가 금과 달러에 함께 기초할 것을 주장했고, 이 교환성 틀이 달러 부족을 일반적 지불 제약으로 만들었다.
구분
달러 부족은 해외에서 달러가 모자라는 현상인 반면, 로버트 트리핀으로 대표되는 딜레마는 그 반대 위험을 지적한다.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멈추면 준비자산 증가의 주된 원천이 사라지고, 적자를 계속하면 달러 과잉이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신뢰를 깎는다는 것이다. 달러 부족을 둘러싼 논쟁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5년 동안 국제 거시경제학을 지배했고, 폴 새뮤얼슨은 이를 '우리 시대의 커다란 미해결 문제'라고 불렀다. 찰스 킨들버거는 달러 부족을 국제수지 적자와 동일시하면서 만성적 무역 불균형을 저축·투자의 소득탄력성과 미국의 지속적 기술 우위에 연결했다. 한편 '달러 부족'이라는 용어는 1950년 킨들버거와 1957년 트리핀의 저작에서 전후 초기 구조적 통화 문제, 즉 금과 달러 자산의 세계적 부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이후 2007~2009년 세계 은행 부문의 달러 자금 부족에도 유추적으로 적용되어 1944~1960년의 범위를 넘어 확장되었다.
사례
해외의 전후 '달러 갭'은 1960년까지 '달러 과잉(dollar glut)'으로 바뀌었다. 1950년대 내내 이어진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세계 유동성을 공급하는 한편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에 달러 보유고를 쌓았고, 그 달러가 금으로 환수되면서 미국의 금 보유고는 위험할 정도로 줄었다. 브렛턴우즈 체제는 1958년 경상 계정 거래에 대한 외환 통제가 철폐되면서 운영에 들어갔다. 미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계속 냈지만 유럽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전체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했고 금 유출이 심해졌다. 이것이 달러 갭이 달러 과잉으로 넘어간 기제였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Definition, history of the dollar gap (1944–1960), Bretton Woods context, and transition to dollar glut.
- imf.org IMF Money Matters exhibit: 'The Dollar Gap' section documenting gold/dollar scarcity, US holding 70% of world gold reserves by 1947, and Europe's depleted reserves.
- fraser.stlouisfed.org Federal Reserve Bulletin (April 1948): primary source documenting the postwar drain on foreign gold and dollar reserves, the $19 billion export surplus gap, and the depletion of European reserves.
- marshallfoundation.org Marshall Foundation: the balance-of-payments gap as the problem Marshall Planners selected to solve; Europe's dollar shortage from too few exports and too many imports from the US.
- 위키백과 (영문)
- federalreservehist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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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