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8년 헌법
Constitution of the DPRK (194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의 헌법이다. 1948년 4월 29일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채택되고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 회의에서 공포되었으며, 1972년 사회주의헌법으로 대체될 때까지 효력을 지녔다. 전문과 10장 104조로 이루어졌고 소련 헌법을 원형으로 삼았으며, 당시에는 서울을 수도로 규정했다. 1972년 헌법과 구별해 인민민주주의헌법이라고도 부른다.
상세
제정 경과
1947년 10월 21일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이 무산되자 북조선에서는 별도의 헌법 제정 절차가 시작되었다. 남조선에서는 이보다 앞서 1946년 12월 12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개원해 과도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1947년 11월 18~19일 북조선인민회의 제3차 회의가 31인의 임시헌법제정위원을 선임했고, 1947년 12월에 작성된 초안이 1948년 2월 6~7일 제4차 회의에 제출되었다. 전인민적 토의는 약 두 달 동안 진행되어 5만 8천 통의 지지 결정서와 2,236건의 수정·첨가안이 접수되었으며, 이 단계의 초안은 10장 102조였다.
헌법 초안을 채택한 것은 1948년 4월 28~29일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였다. 회의는 헌법제정위원회가 제출한 초안을 원안대로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어 1948년 7월 9~10일 제5차 회의는 이미 채택된 헌법을 우선 북조선에서 실시할 것과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8월 25일에 치를 것을 결정했을 뿐이며, 영문 위키백과가 서술하는 1948년 7월 10일의 '채택'은 채택과 실시 결정을 혼동한 것이다. 1948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 회의가 헌법을 공포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 이튿날인 9월 9일 선포되었다.
제정 과정에서 소련의 개입은 문서로 남아 있다. 1948년 7월 10일 소련 정치국은 시티코프에게 인민회의를 통해 헌법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는 같은 날 제5차 회의가 내린 실시 결정과 맞물린다. 안드레이 란코프는 이 헌법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북조선 소련군정 책임자 테렌티 시티코프에 의해 직접 편집되었고 일부 조항은 나중에 소련 감독관들에 의해 다시 쓰였다고 서술한다. 시티코프 문서도 원래의 1948년 북조선 헌법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시티코프가 주로 작성했다고 적는데, 이는 란코프 및 관련 문헌의 평가로서 중립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인용하는 입장이다.
원형과 구조
거버넌스 구조는 소련 1936년 헌법, 곧 '스탈린 헌법'을 강하게 따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소련 헌법을 원형으로 삼았다고 적고, 컬럼비아 한국법센터의 연구는 1936년 스탈린 헌법을 모델로 했다고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 최고인민회의는 소련 최고소비에트처럼 최고 국가기관이자 다른 헌법 기관들의 유일한 권력 원천으로 자리했다.
전문과 10장 104조로 구성되었다. 제1장 근본원칙(제1~10조), 제2장 공민의 기본적 권리 및 의무(제11조부터), 제3장 최고주권기관(최고인민회의, 제32조), 제4장 국가중앙집행기관(내각), 제5장 지방주권기관, 제6장 재판소 및 검찰소로 이어지고, 제9장이 국장·국기 및 수부, 제10장이 헌법 수정의 절차(제104조)이다.
이 헌법은 1946년 이후 북조선에서 시행된 개혁, 곧 토지개혁과 산업·자원의 국유화, 여러 자유와 권리를 법제화했다. 최고인민회의를 최고 국가기관으로 두고 휴회 중에는 상임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행하며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게 했고, 내각을 최고 집행기관, 수상을 정부 수반으로 규정했다. 제33조는 입법권을 오직 최고인민회의만이 행사한다고 정했다.
조문의 내용과 특징
이 헌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인민민주주의'로 규정했고 주체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약 24년간 효력을 지녔다. 사회주의헌법과 달리 사적 소유를 폭넓게 보호했다. 제5조는 생산수단이 국가·협동단체 또는 사적 자연인·법인에 속한다고 하면서 광산·삼림·주요 기업·은행·철도·운수·항공·통신은 국유화했고, 제8조도 법이 정한 사적 소유를 보호하며 상속을 보장했다. 제6조는 일본 국가와 일본인, 조선인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지주제를 폐지했으며, 토지는 자기 노력으로 경작하는 자에게 주되 지역에 따라 최대 5정보 또는 20정보로 제한했다.
공민의 권리와 의무도 명문화했다. 제11조 평등, 제12조 만 20세부터의 선거권, 제13조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제14조 신교의 자유, 제21조 주거와 서신의 불가침, 제24조 임의 체포로부터의 보호, 제25조 청원권을 규정했고, 제29조는 경제적 사정에 맞춘 납세 의무를 두었다. 이 권리들이 실제로 보호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제103조는 서울시를 수도로 규정했으며, 제104조는 헌법 수정을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으로 두고 재적 대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요구했다.
개정과 대체
1954년 4월 23일, 1954년 10월 30일, 1955년 3월 11일, 1956년 11월 7일, 1962년 10월 18일에 여러 차례 개정되었으나 대체로 소폭의 수정에 그쳤다. 1972년 12월 27일 제5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이 채택되면서 효력을 잃었다. 채택 당시 제103조가 서울을 수도로 규정했다는 점은 분단 상황을 헌법이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