霸王别姬 · 1993

패왕별희 (영화)

Farewell My Concubine (film)

천카이거가 리비화의 소설을 옮겨 1993년에 만든 중국·홍콩 합작 영화. 경극 《패왕별희》를 함께 공연하는 두 배우 청뎨이와 돤샤오러우의 반세기를 군벌 시대부터 문화대혁명 뒤까지 따라간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중국에서는 14분이 잘린 채 재개봉되었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1924년 베이징. 창녀 어머니가 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더우쯔의 그 손가락을 잘라 경극 학교에 맡긴다. 혹독한 매질 속에서 그를 지켜 주는 사람은 사형 스터우뿐이다. 여자 역을 맡게 된 더우쯔는 “나는 본래 계집아이”라는 대사를 번번이 “사내아이”라고 틀리다가, 후원자 앞에서 스터우의 호통을 듣고야 제대로 말한다. 얼마 뒤 그는 늙은 내시에게 욕을 당한다.

둘은 청뎨이와 돤샤오러우라는 이름으로 《패왕별희》의 우희와 패왕을 맡아 베이징을 사로잡는다. 뎨이는 무대의 사랑을 무대 밖까지 끌고 나왔지만, 샤오러우는 기녀 쥐셴과 혼인한다. 일본 점령기에는 샤오러우를 구하려고 뎨이가 일본군 앞에서 노래하고, 전쟁이 끝나자 국민당이 그를 매국노로 재판한다. 그는 아편에 빠지고, 공산당 시대에는 거둬 키운 고아 샤오쓰가 그의 배역을 빼앗는다.

1966년 홍위병이 극단 사람들을 끌어낸다. 패왕 분장이 망가진 샤오러우 앞에서 뎨이는 우희 차림으로 차분히 그의 얼굴을 고쳐 준다. 그러나 샤오러우는 몰리다 뎨이를 고발하고, 뎨이는 쥐셴의 과거를 폭로하며, 샤오러우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맹세한다. 쥐셴은 목을 맨다. 11년 뒤 두 늙은 배우가 다시 이 극을 맞춰 보다가, 샤오러우가 옛날 그 대사를 꺼낸다. 뎨이는 칼을 뽑아 우희처럼 자결한다. 샤오러우는 “뎨이”라고 외치다 “더우쯔”라고 작게 부른다.

왜 금지되었다가 풀렸나?

영화는 1993년 1월 홍콩에서 먼저 공개되었고 그해 칸에서 《피아노》와 나란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중국어 영화로서는 처음이다. 중국 개봉 몇 주 뒤 공산당 정치국이 수정을 요구했다. 베이징 시사는 허용했지만 동성애와 성 정체성의 표현, 주요 인물의 자살, 1960년대의 혼란 묘사가 문제였다. 9월에 상영이 다시 허가되었으나 14분이 잘린 판본이었다. 국제 비판을 잠재우고 2000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되려는 판단이었다고 설명된다.

감독의 삶과 어떻게 이어지나?

샤오러우가 뎨이를 고발하는 장면은 천카이거 자신의 경험과 겹친다. 그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이 되어 아버지를 비판한 일을 나중에 뉘우쳤다고 하며, 그 경험이 이 영화의 묘사에 스며 있다고 평가된다. 그 아버지 천화이아이는 영화 《청춘의 노래》의 공동 감독이다.

어떻게 평가되나?

로저 이버트는 그 시대 중국에서 살아 보는 것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게 해 준다고 썼다. 뎨이의 정체성을 두고는 연구가 계속된다. 평론가들은 경극에 길러진 탓이라는 측면과, 그가 스스로 사랑하고 집착한 측면을 함께 읽는다. 장궈룽의 대사는 대부분 베이징 배우의 목소리로 더빙되었고, 천카이거는 괴로움으로 목소리가 뭉개지는 두 장면에만 그의 목소리를 남겼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3. zh.wikipedia.org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