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헤 (FET y de las JONS)
FET y de las JONS (Falange)
프랑코 체제의 유일 정당으로, 스페인 내전 뒤 법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정당이었다. 1937년 4월 통합령으로 팔랑헤와 카를로스파 전통주의자를 강제로 합쳐 만들었고, 프랑코가 전국 지도자(Jefe Nacional)가 되었다. 독재기에는 흔히 「국민운동」(Movimiento Nacional)으로 불렸으며 1977년 수아레스 정부가 해산했다.
상세
내전이 시작되자 팔랑헤는 봉기 세력 편에 섰고 당원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으로 늘었다. 창립자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1936년 11월 20일 알리칸테 감옥에서 처형된 뒤 당은 임시로 마누엘 에디야가 이끌었다. 1937년 4월 20일 통합령으로 팔랑헤 에스파뇰라 데 라스 혼스와 카를로스파 전통주의자 등이 하나의 당으로 합쳐졌고, 「총통」 프랑코가 새 단일 정당의 전국 지도자가 되었다. 통합을 인정하지 않은 에디야는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되었다.
1937년 8월 4일 공포된 당규에 따라 프랑코는 「신과 역사 앞에서만」 책임지는 전국 지도자였다. 초기에는 라이문도 페르난데스 쿠에스타가 사무총장이었으나 실권자는 프랑코의 처남이자 내무장관인 라몬 세라노 수녜르였다. 1941년 5월 위기와 1942년 8월 베고냐 사건을 거치며 프랑코는 팔랑헤주의자들의 힘을 꺾었다. 당원은 1942년 93만 2천 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945년 이후 잠잠하던 당은 1948년부터 다시 활기를 띠었으나, 스페인어 출처는 1958년 「국민운동 기본원칙법」을 당의 종말의 시작으로 평가한다. 이후 당은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팔랑헤의 이념적 기반은 흐려졌다. 프랑코 사후 1976년 아돌포 수아레스가 사무총장 장관이 되었고, 1977년 4월 7일 수아레스 정부가 FET y de las JONS의 공식 해산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