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deregulation / financial liberalisation · 1980–2008 (미국에서는 1980년 예금기관 규제완화 및 통화관리법부터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법,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 2004년 투자은행 순자본 규칙 면제까지 이어졌고, 2008년 금융위기 뒤 도드-프랭크법(2010)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금융 자유화

Financial deregulation

은행과 증권사가 할 수 있는 일, 받을 수 있는 금리, 질 수 있는 빚, 다룰 수 있는 상품에 국가가 걸어 둔 제한을 풀어 시장에 맡기는 정책.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 축으로 퍼졌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갈라놓은 글래스-스티걸법의 핵심 조항을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법으로 없애고,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으로 장외 파생상품을 규제 밖에 두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상세

대공황 뒤 미국은 은행이 예금을 받아 위험한 증권 투자에 쓰다 망하는 일을 막으려고 금융을 촘촘히 묶었다. 1933년 은행법의 이른바 글래스-스티걸 조항은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과 증권을 인수하고 거래하는 투자은행을 갈라놓았고, 예금 금리에도 상한을 두었다. 이 틀은 1970년대까지 큰 금융위기 없이 유지되었다.

1980년대부터 이 제한이 하나씩 풀렸다. 1980년 카터 대통령이 서명한 예금기관 규제완화 및 통화관리법은 은행 영업에 대한 여러 제한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예금보험 한도를 4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올렸다. 1982년 레이건 대통령이 서명한 간-세인트저메인법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며 은행 탈규제를 본격화했고,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 위기로 이어졌다. 그 사이 금융 부문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과 이윤, 정치적 힘을 빠르게 키웠다.

1998년 상업은행 지주회사 시티코프가 보험사 트래블러스와 합병해 시티그룹을 만들었다. 이는 글래스-스티걸법 위반이었지만 연방준비제도가 임시로 허가했고, 1년 뒤인 1999년 11월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이 은행·증권·보험의 결합을 영구히 합법화했다. 같은 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위원장 브룩슬리 본은 장외 파생상품 규제를 검토하려 했으나,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루빈 재무장관, 레빗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이 반대했다. 2000년 12월 상품선물현대화법은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장외 파생상품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증권거래위원회의 감독 밖에 두었다. 2004년에는 증권거래위원회가 5대 투자은행을 순자본 규칙에서 면제해 이들이 훨씬 많은 빚을 질 수 있게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뒤 금융 자유화의 책임을 두고 평가가 갈렸다. 금융위기조사위원회 다수 보고서와 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은 금융시장 탈규제를 위기의 뿌리로 보았고, AIG가 무너진 것도 장외 파생상품을 사실상 규제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글래스-스티걸 폐지의 효과가 「간접적」이었다며 상업은행에 투자은행의 문화가 퍼진 점을 들었다. 반면 위기의 중심에 있던 베어스턴스나 리먼 브라더스는 애초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던 투자은행이었다며 폐지의 영향을 낮게 보는 쪽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쪽에서는 금융 자유화를 금융 부문이 커지고 경제 전체가 금융에 기대는 금융화의 한 과정으로 본다. 2010년 도드-프랭크법은 장외 파생상품 규제와 대형 금융기관 감독을 강화하며 방향을 되돌렸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