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共產黨第一次全國代表大會 · 1921.07.23–08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1st National Congress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1921년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열려 8월 초 저장성 자싱 남호의 배 위에서 끝난 중국공산당의 창당 대회. 각지 공산주의 소조를 대표한 13명과 코민테른 대표 마링·니콜스키가 참석해 당원 57명의 당을 세우고, 자본가 계급 정권의 타도와 사유재산 폐지, 코민테른 가입을 내건 첫 강령을 채택했으며 천두슈를 서기로 뽑았다.

상세

소집: 1921년 6월 코민테른의 마링과 니콜스키가 상하이에 와서 상하이 소조의 리다에게 전국 대회를 재촉했다. 리다와 리한쥔이 각지 소조에 두 명씩 대표를 보내라는 편지를 띄웠고, 대회 비용은 코민테른이 댔다.

대표: 상하이의 리다·리한쥔, 베이징의 장궈타오·류런징, 창사의 마오쩌둥·허수형, 우한의 둥비우·천탄추, 지난의 왕진메이·덩언밍, 광저우의 천궁보, 일본 유학생의 저우포하이, 천두슈의 대리 바오후이썽까지 13명이었다.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참석하지 못했다. 장궈타오가 회의를 주재했고 니콜스키는 프로핀테른의 목표를 연설했다. 7월 30일 밤 프랑스 조계 경찰이 회의장을 수색하자 대표들은 자싱 남호의 유람선으로 옮겨 대회를 마쳤다.

결정과 그 뒤: 강령은 당의 이름을 중국공산당으로 하고 자본가 계급 정권의 타도,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제의 철폐, 코민테른 가입을 목표로 밝혔다. 천두슈가 결석한 채 서기로, 장궈타오가 조직, 리다가 선전 책임자로 뽑혔다. 강령의 원문은 1957년 소련이 넘겨준 코민테른 문서 속 러시아어 번역으로 확인되었다. 개막일은 1981년에야 7월 23일로 공식 확정되었고 폐막일은 지금도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여러 설이 있으며, 공산당은 7월 1일을 창당 기념일로 지킨다. 13명 가운데 1949년 건국 선포식에 선 사람은 마오쩌둥과 둥비우뿐이고, 일곱 명은 당을 떠났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