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on française · 1946.10.27–1958

프랑스 연합

French Union

1946년 10월 27일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이 옛 식민 제국을 대신해 만든 정치 단위. 프랑스 본국, 해외 도, 해외 영토, 협동국(인도차이나 3국과 모로코·튀니지), 유엔 신탁통치령으로 이루어졌고 식민지 주민의 「원주민」 신분을 없앴다. 대통령·고등평의회·의회를 두었으나 실권은 프랑스 의회에 남았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 쪽 군대는 「프랑스 연합군」이었다. 1958년 제5공화국의 프랑스 공동체로 바뀌었다.

상세

「프랑스 연합」이라는 말은 1945년 3월 24일 인도차이나에 관한 선언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쓰였다. 1946년 헌법은 더는 프랑스 식민지가 없고 본국·해외 도·해외 영토가 하나의 프랑스 연합을 이룬다고 했으며, 목표는 해외 영토를 프랑스 시민이 사는 「더 큰 프랑스」로 동화하는 것이었다. 연합의 대통령은 공화국 대통령이었고, 고등평의회는 1951년 처음 열려 모두 세 번밖에 모이지 않았으며, 공화국 평의회·국민의회·해외 지역 의회 대표로 이루어진 연합 의회는 실권이 없었다. 식민지에 지방 의회가 생겼지만 권한은 좁았다.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연합은 전쟁의 틀이었다. 1946년 초 베트민은 프랑스 연합 안의 독립을 약속받고 프랑스군의 귀환에 동의했으나 협상은 12월 깨졌다. 1949년 엘리제 협정으로 바오다이의 베트남국이 프랑스 연합 안의 협동국으로 세워졌지만 프랑스에 반쯤 매여 있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1953년 말, 베트남국은 1954년 6월 4일 프랑스와 대등한 회원이 되었다. 1954년 7월 20일 제네바에서 베트남 적대행위 중지 협정에 서명한 것은 베트남 인민군 총사령관과 「인도차이나 프랑스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다.

1956년 1월 31일 알제리 전쟁에 대응해 동화 대신 자치를 택하는 개편이 이루어졌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958년 샤를 드골의 제5공화국은 프랑스 연합을 자치 국가들의 연방인 프랑스 공동체로 바꾸었다. 당시 펠릭스 우푸에부아니나 레오폴 상고르 같은 아프리카 지도자는 투자와 민주적 개혁을 반겼지만, 평등을 내세운 식민 서사와 현실의 모순을 겪은 아프리카 학생들 사이에서는 반감이 커졌고, 프랑스 연합이 새 이름을 단 식민주의라는 비판도 나왔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treaties.u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