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장 후분배 · 1960년대–1980년대

선성장 후분배

Growth First, Distribution Later

박정희 개발독재 시기 한국의 경제발전 원리로, 먼저 성장을 추구하고 분배와 복지는 나중으로 미룬다는 정책 기조였다. 서강학파(남덕우 등)에 의해 이론화되었으며, 재벌 우선·수출 지상주의와 결합하여 저임금 노동 통제와 사회복지 억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기능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후분배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고 성장의 과실은 재벌에 집중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상세

기원과 이론화

선성장 후분배는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전략을 정당화한 핵심 이념이었다.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한 서강학파, 즉 남덕우(전 총리), 이승윤·김만제(전 부총리) 등이 이 논리를 체계화했다. 이들은 전형적인 성장주의자로, 재벌 우선·수출 지상주의와 함께 '선성장·후분배'를 주장하며 한국의 압축 성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작동 방식

이 원리는 실질적으로 다음 방식으로 작동했다: (1) 국가가 은행을 국유화하고 정책금융을 통해 선별된 재벌에 집중 배분한다. (2) 노동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할 '비용 항목'으로 간주되며, 노조 활동은 경제발전 저해로 낙인찍힌다. (3) 복지·분배 정책은 '성장 후'로 무기한 연기된다. 이병천(2004)은 이것이 '국가-재벌-은행의 삼각 밀착체제' 아래 노동대중이 병영적 통제 속에서 성장 시스템에 봉사하도록 한 장치였다고 분석한다.

비판과 유산

비판자들은 선성장 후분배가 실질적으로 '성장의 과실은 재벌이 사적으로 획득하고, 위험과 비용은 사회 전체가 떠안는' 비대칭 구조의 이념적 덮개였다고 지적한다. 1987년 민주화와 1997년 IMF 위기를 거치면서도 성장의 과실이 분배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 개념은 한국 발전국가 모델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남아 있다.

출처

  1. 위키백과 (한국어) 서강학파 문서: '이들은 전형적인 성장주의자로 재벌 우선, 수출 지상주의, 선 성장ㆍ후 분배 등을 주장했다.' 선성장 후분배가 서강학파의 핵심 주장 중 하나임을 확인.
  2. peoplepower21.org 이병천(2004), 「재벌체제의 빛과 그림자」: '노동 대중은 병영적 통제의 억압 속에서 '선성장 후분배' 성장 시스템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선성장 후분배가 개발독재 시기 노동통제와 결합된 시스템이었음을 확인.
  3. 위키백과 (한국어) 김종인 문서: '서강학파로 분류되나, 선성장 후분배, 재벌 육성을 중심으로 한 압축성장을 주장해온 남덕우 등 서강학파 선배들과는 입장을 달리하는 2세대로 구분된다.' 남덕우 등이 선성장 후분배를 주장했음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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