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2월 6일을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
historiographical dispute over 6 February 1934
이 개념은 1934년 2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반의회주의 시위를 통일된 파시스트 쿠데타로 볼 것인지, 서로 조정되지 않은 우익 리그들의 폭력적 폭동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을 가리킨다. 연구자들은 각 리그의 목표와 지휘 체계, 시위의 실제 전개, 의회 장악을 입증하는 문서의 존재를 함께 검토한다.
상세
논쟁의 한 축은 당시 좌파가 제기한 ‘파시스트 쿠데타’ 해석이다. 여러 리그의 준군사적 외양, 반의회주의, 지도자 숭배와 폭력은 파시즘과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다른 축의 연구는 리그들이 목표와 조직 면에서 분열되어 있었고, 특히 프랑수아 드 라 로크의 Croix-de-Feu가 의회 공격을 명령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통일된 정권 장악 계획을 부정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사건의 폭력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폭동’과 ‘쿠데타’라는 분류가 어떤 사료와 정치적 기억에 근거하는지 분석하는 데 쓰인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사건의 성격, 각 리그의 조직과 목표, 통일된 쿠데타 계획 부재 및 역사학적 평가를 지원)
- persee.fr (1934년 2월 6일을 둘러싼 ‘파시스트 폭동’, ‘파시스트 음모’, ‘파시스트 쿠데타’라는 정치적 의미화와 담론의 변화를 지원)
- liverpooluniversitypress.co.uk (6 February 1934 폭동에 대한 영미권 역사학의 해석을 다룬 학술 논문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