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odomor genocide debate · 1932년~현재

홀로도모르 제노사이드 논쟁

Holodomor genocide debate

홀로도모르는 소련 당국의 정책으로 발생한 인위적이고 피할 수 있었던 1932~1933년 기근이라는 점에는 연구자들의 폭넓은 합의가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우크라이나인을 민족 집단으로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졌는지, 따라서 제노사이드 협약상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는 법적·역사학적 논쟁으로 남아 있다.

상세

논쟁의 핵심은 기근의 인위성 여부가 아니라 의도와 표적의 성격이다. 제노사이드 해석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과도한 곡물 징수, 식량과 종자의 압수, 기근 지역 농민의 이동 제한, 우크라이나의 지식인과 정치 세력에 대한 탄압을 결합된 조치로 본다.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연구자들은 집단화와 급속한 산업화의 파괴적 정책, 1932년의 흉작, 소련 여러 지역의 동시 기근을 강조하며 민족 집단을 파괴하려는 특수한 의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본다. 라파엘 렘킨은 1953년 우크라이나 민족의 파괴를 소련 제노사이드의 고전적 사례로 규정했으며, 우크라이나와 여러 국가의 공식 인정은 학술 논쟁과 별개로 기억 정치와 법적 판단의 층위를 더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supports the distinction between consensus that the famine was man-made and debate over genocidal intent and legal classification)
  2. holodomor.ca (Bohdan Klid, Modern Genocide, ABC-CLIO, reprinted by Holodomor Research and Education Consortium; supports the avoidable state-caused famine finding, arguments for and against genocide classification, and the role of intent under the Genocide Con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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