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전술
Hugging the Enemy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바실리 추이코프가 고안한 도시 방어 전술로, 독일군과의 전선 간격을 수류탄 투척 거리까지 좁혀 루프트바페의 공중 폭격과 원거리 포격을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아군과 적군의 위치가 너무 가까워 독일 공군이 붉은 군대 진지를 폭격하면 자국군도 함께 타격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독일군의 가장 강력한 전술적 우위였던 제공권을 상쇄했다. 이 전술은 소련군이 폐허 속에서 소규모 돌격조(shock groups)를 운용하며 야간 백병전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이후 베를린 공방전 등 후속 도시전에서도 표준 교리가 되었다.
상세
「죽거나, 지켜내거나」
1942년 9월 12일, 바실리 추이코프는 스탈린그라드 서안에서 제62군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도시를 사수하라는 임무였고, 그는 독일 제6군의 기갑·기계화 부대에 포위될 위험을 안은 채 지휘소를 도시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아군 전선을 독일군에 최대한 붙여 두는 쪽을 택했다. 적과 아군의 참호가 수류탄을 던질 수 있는 거리에 놓이자 독일 항공과 포병은 아군을 함께 때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폭격을 함정으로 바꾸다
이 선택은 독일군의 전격전에 대한 대응이었다. 소련군은 독일군이 도시를 폭격하는 것을 이용해 기갑부대를 폐허로 끌어들여 진격을 지연시켰고, 그곳에서 화염병과 대전차총, 근거리에서 운용한 포병으로 독일 전차를 잡았다. 슈투카 급강하폭격기까지 동원된 독일의 공중 우위는 적과 아군이 뒤섞인 구역에서 무력해졌다. 폐허는 지형 자체가 방어자의 무기였다.
돌격조와 밤의 반격
독일군은 1942년 11월 중순까지 도시 대부분을 점령했지만 볼가강 서안의 좁은 거점들을 끝내 밀어내지 못했다. 소련군은 폐허 속에서 소규모 돌격조를 운용해 기습적으로 건물을 점거하고 지하 시설로 이동했으며, 주로 야간에 반격해 낮에 잃은 자리를 되찾았다.
대가와 후속 적용
이 전술은 스탈린그라드가 붉은 군대 최초의 대규모 도시전이라는 조건에서 나왔다. 성과는 독일군의 진격을 멈춰 세운 것이었고, 그 대가는 도시와 양측 병력이 함께 치른 것이었다. 추이코프의 제62군은 근위 제8군으로 개편돼 베를린 시가전에서 같은 경험을 다시 썼고, 1945년 5월 2일 추이코프의 지휘소에서 바이들링 장군이 베를린 수비대의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huikov's development of 'hugging the enemy' tactic: 'keeping the German army so close to them as to minimize the airpower enjoyed by the Wehrmacht'
- 위키백과 (러시아어) 'В. И. Чуйков вводит тактику ближнего боя. Советские и немецкие траншеи располагаются на расстоянии броска гранаты'
- mwi.westpoint.edu West Point Modern War Institute: shock groups 'hugging the Germans near the frontlines to avoid the effectiveness of German airpower'
- nationalww2museum.org National WWII Museum: Chuikov 'implemented new small-unit tactics that helped Red Army forces close the distance with the enemy'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