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
Iberian Anarchist Federation (FAI)
1927년 발렌시아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무정부주의 단체들이 세운 연맹. 무정부 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인 전국노동총연맹(CNT)이 무정부주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1930년대 초 CNT 안에서 온건파를 밀어내고 주도권을 쥐었으며, 둘의 관계가 워낙 가까워 흔히 「CNT-FAI」로 묶어 불린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프랑코 군에 맞선 싸움의 앞줄에 섰다.
상세
FAI는 1927년 7월 25~26일 발렌시아의 한 해변에서 열린 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 망명 스페인인 무정부주의 단체 회의에서 생겨났다. 그 전해 마르세유에서 예비 회의가 있었다. 이름의 「이베리아」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무정부주의자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으려는 뜻이었지만, 나중에는 포르투갈의 참여가 끊겨 완전히 스페인 조직이 되었다. FAI는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 아래 CNT의 관료 기구가 노동과 자본 사이의 중개자가 되어 간다고 보고 이에 맞섰다.
제2공화국 초기인 1931년부터 FAI는 CNT 안에서 공화국에 협조적인 「30인파」(트레인티스모)를 밀어냈다. 이들은 1933년 3월 반FAI 반대파 노조를 만들었고, 앙헬 페스타냐 등 가장 온건한 노조 활동가들은 1934년 4월 생디칼리스트당을 세웠다. 그 결과 내전이 시작될 무렵 CNT 지도부는 FAI가 확고히 장악하고 있었다. FAI는 1932년 알토 요브레가트 봉기와 1933년 1월 봉기의 선동자로 지목되었다.
내전이 터지자 FAI 회원들은 카탈루냐에서 혁명적 집산화와 민병대를 이끌었고, 주로 아라곤 전선의 동부군에서 싸웠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 5월 사건에서는 CNT와 함께 자치정부·공산당 세력과 맞섰다. 프랑코 사후 민주화 이후에도 FAI는 활동을 이어 가며 국제 아나키스트 연맹에 속해 있고, 기관지 『티에라 이 리베르타드』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