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政翼賛会 · 1940–1945

대정익찬회

Imperial Rule Assistance Association

1940년 10월 12일 제2차 고노에 내각 아래 출범해 1945년 6월까지 존속한 일본의 정치결사. 나치 독일을 본뜬 일국일당제를 목표로 한 신체제 운동에서 나왔고 기성 정당들이 해산해 합류했으나, 위헌론 등으로 일당독재 정당이 되지 못하고 정부의 사회 통제를 돕는 국민운동 조직에 머물렀다. 1945년 국민의용대에 흡수되어 해산했다.

상세

일본어 출처에 따르면 1932년 5·15 사건 뒤 정당이 신망을 잃자 관료와 육군의 혁신 세력 안에서 복수정당제를 일국일당제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1937년 제1차 고노에 내각이 성립하자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를 당수로 한 신당 운동이 일었고, 사회대중당은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수립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1938년 국가총동원법 등이 통과되어 당초 목표가 이루어지자 운동은 일시 멈추었고, 고노에가 사임하면서 좌절되었다.

1940년 7월 제2차 고노에 내각이 성립하자 신체제 준비회가 꾸려졌다. 고노에와 측근 사이에서는 일국일당제가 천황 대권과 충돌해 헌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9월 27일 각의에서 「대정익찬회」라는 이름이 정해지고 고노에 총리가 총재에 취임했으며, 10월 12일 총리 관저에서 발회식이 열렸으나 고노에는 강령을 발표하지 않았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익찬회는 입헌정우회·입헌민정당·국민동맹·사회대중당 등 기성 정당을 합쳐 만들어졌다.

기획원 혁신 관료들이 짠 경제신체제 확립 요강은 재계의 반대로 크게 후퇴했고, 1941년 제국의회는 익찬회가 일국일당적 존재가 되는 것을 경계해 익찬회 예산을 3,700만 엔에서 800만 엔으로 깎았다. 고노에는 의회와 우익 세력에 영합해 개조를 결정했고, 1941년 4월 기획·정책·의회 3국이 폐지되고 지부장 등 요직을 내무 관료가 차지하면서 익찬회는 사실상 내무성의 보조 조직이 되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1942년 총선 뒤 모든 의원은 익찬정치회에 가입해야 했다. 1945년 3월 본토 방위를 위한 국민의용대 결성이 각의에서 결정되어 대정익찬회와 대일본익찬장년단, 대일본부인회가 여기에 흡수되었고, 대정익찬회는 1945년 6월 해산했다. 일본어 출처는 해산일을 서두에서 6월 13일, 본문에서 6월 23일로 적고, 영어 출처는 6월 13일로 적는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ja.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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