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혁명당
Institutional Revolutionary Party (PRI)
멕시코 혁명의 승리자들이 1929년 국민혁명당으로 세우고 1946년 지금 이름을 얻은 멕시코의 정당. 1929년부터 2000년까지 71년 동안 끊김 없이 정권을 잡아 20세기 대부분 사실상의 일당 국가를 이끌었다. 대통령이 후계자를 지명하는 관행, 노동자·농민·민중 부문을 당에 묶은 조합주의, 포섭과 선거 부정, 정치 탄압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노선은 대통령에 따라 좌우로 크게 움직였고,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돌아섰다.
상세
1928년 7월 대통령 당선자 알바로 오브레곤이 암살되자, 전직 대통령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가 1929년 3월 4일 국민혁명당(PNR)을 세웠다. 혁명파 장군들과 지방 실력자들이 대통령 승계를 둘러싸고 무력으로 다투는 일을 끝내고 권력을 평화롭게 넘기려는 장치였고, 출처는 이 당을 「지방 보스들의 연합」이라 부른 평가를 전한다. 1938년 석유 산업을 국유화한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당을 멕시코 혁명당(PRM)으로 개편해 노동자·농민·민중·군 부문을 대중 조직으로 묶었고, 「노동자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목표로 내걸었다. 1946년 이름이 제도혁명당으로 바뀌면서 군 부문이 빠지고 사회주의 목표도 사라졌으며, 구호는 「민주주의와 정의」가 되었다.
당은 대통령을 꼭대기에 둔 국가 체제 그 자체였다. 2000년까지 모든 대통령이 당원이었고, 1976년까지 상원 의원 전원, 1989년까지 주지사 전원이 당 소속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후계자를 가리키는 「데다소」가 대통령 후보를 정했고, 당에 묶인 이른바 「차로」 노조가 선거 때 표를 동원했다. 1940~1970년 수입 대체 공업화로 GDP가 여섯 배로 늘어난 「멕시코의 기적」이 당의 지배를 정당화했지만, 1968년 틀라텔롤코 학살은 그 지배의 폭력을 드러냈다. 1990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당 아래의 멕시코를 「완벽한 독재」라 불렀다.
1970년대부터 당 정부는 외채로 성장을 떠받쳤다. 루이스 에체베리아 정부(1970~1976)는 사회 지출을 외채로 늘려 외채가 250억 달러에 이르렀고, 1976년 8월 페소를 처음 변동환율로 돌렸다.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는 새로 발견된 유전을 담보로 외국 은행에서 달러를 빌려 외채를 590억 달러로 늘렸으나, 1981년 금리가 치솟고 1982년 유가가 떨어지자 외채 지불을 멈추고 은행을 국유화했다. 1982년 미겔 데 라 마드리드부터는 경제학자 출신 「테크노크라트」 대통령들이 국영 기업을 1155개에서 412개로 줄이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폈다.
1986년 외채 상환을 위한 사회 지출 삭감에 반대한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 등이 당에서 쫓겨났고, 1988년 대선에서는 개표 부정으로 카를로스 살리나스가 당선되었다(당시 대통령 데 라 마드리드가 2004년에 인정했다). 1989년 당을 떠난 좌파가 민주혁명당(PRD)을 세웠다. 당은 2000년 대선에서 처음 정권을 잃었고, 2012년 엔리케 페냐 니에토로 돌아왔다가 2018년과 2024년 대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2003년부터 2025년까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정회원이었고, 2024년 신자유주의를 공식으로 버리고 「중도 좌파」를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