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1년–현재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Socialist International

1951년 프랑크푸르트 창립대회에서 현재의 형태를 갖춘 사회민주주의·노동 정당들의 국제 조직이다. 민주사회주의를 내걸고 출범했으며 이후 노선이 점차 온건해졌고, 전간기 노동사회주의 인터내셔널(LSI)의 후신으로 19세기 말 국제 노동운동의 계보를 잇는다. 여러 대륙의 정당·조직을 묶으며, 사무국의 자체 집계로 132개 정당·조직이 가맹해 있다. 가맹 조직의 대다수는 사회민주주의·제3의 길 개혁주의 정당이고 소수만이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상세

성립과 계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재건된 국제 조직으로, 1951년 6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서독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열린 제1차 대회에서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 대회에서 채택된 선언 「민주사회주의의 목표와 과제」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린다.

계보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인터내셔널이 1889년 7월 14일 파리에서 결성되었고, 1919년 2월 베른 인터내셔널, 1921년 2월 27일 비엔나 인터내셔널이 잇따라 조직되었다. 이들은 1923년 5월 함부르크에서 합류해 노동사회주의 인터내셔널(LSI)을 이루었으며, LSI는 1923년부터 1940년까지 활동한 SI의 전신이다.

LSI는 국제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주도권을 두고 코민테른과 경쟁했지만, 코민테른과 달리 자율적 민족 정당들의 연합체였고 가맹 정당을 직접 통제하지 않았다. 이런 관행은 SI에도 이어져, 전통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정당들의 연합체로서 가입에 별다른 전제 조건을 두지 않고 구속력 있는 정책 강령도 갖지 않는다.

조직과 활동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4년마다 열리는 대회와 모든 가맹 정당이 참여해 연 2회 열리는 이사회이며, 사무국은 런던에 있다. SI는 유엔에서 제1범주 협의적 지위를 가지며, 국제사회주의청년동맹(IUSY),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여성(SIW),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국제노동문제연구소(IFM/SEI) 같은 우호 조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대회 개최지는 프랑크푸르트(1951)를 시작으로 밀라노(1952), 스톡홀름(1953), 런던(1955), 비엔나(1957), 함부르크(1959), 로마(1961), 암스테르담(1963) 등으로 이어졌고 이후 마드리드(2022)에 이르기까지 여러 도시에서 열렸다. 1989년 6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8차 대회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새로이 한 원칙선언을 채택했다. 역대 의장으로는 모건 필립스(1951–1957), A. 안데르센(1957–1962), 에리히 올렌하워(1963), 브루노 피터만(1964–1976), 빌리 브란트(1976–1992), 피에르 모루아(1992–1999), 안토니우 구테레스(1999–2005), 요르고스 파판드레우(2005–2022), 페드로 산체스(2022–)가 있다.

냉전기 노선과 라틴아메리카

1951년 창립 문헌은 자본주의를 "소유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보다 앞세우는" 체제로 비판하고 제국주의적 팽창과 식민지 착취를 규탄했다. 동시에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획일적 접근을 거부했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강한 대립각을 세워 "국제 공산주의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도구"이며 일당 독재를 추구한다고 규정하고 복수 정당의 존재를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한편으로는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소극적 반제국주의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며 세계 부의 재분배를 요구했다.

전후 초기 SI는 포르투갈(1974)과 스페인(1975)에서 독재가 민주주의로 넘어갈 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재건을 도왔다. 그러나 1976년 제네바 대회까지 유럽 밖 회원은 거의 없었고 라틴아메리카와 공식적 관계도 맺지 않았다. 한국어권 자료는 이 시기 SI를 미국·영국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친서방 노선으로 규정하고, 1954년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정권 전복과 1965년 도미니카 공화국 침공을 규탄하지 않았다는 비판적 서술을 전한다. 이러한 평가는 특정 문헌의 해석으로서 귀속해 읽을 필요가 있다.

1973년 칠레 쿠데타가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프랑수아 미테랑의 지도 아래 SI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과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의 운동을 지지했고, 1980년대에는 대부분의 가맹 정당이 산디니스타를 지지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에 걸쳐 SI는 동서 관계와 군비 통제를 놓고 미국·소련과 폭넓게 접촉하며 데탕트와 SALT II, START, INF를 지지했다.

노선 전환과 이탈

1980년대에 SI는 사회주의 경제보다 사회적 시장경제에 더 우호적인 입장으로 기울어, 시장이 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는 사회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정당들의 가입이 늘었고 아르헨티나 급진시민연합, 멕시코 제도혁명당, 콜롬비아 자유당 같은 중도 정당을 받아들여 "고객주의적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핑크 타이드의 많은 좌파 정당은 거리를 두었다.

좌파의 이탈도 이어졌다. 우루과이 사회당과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은 2017년 가맹 정당들이 긴축·민영화·규제완화·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데 반발해 SI를 탈퇴했다. 우루과이 사회당은 2013년 결성된 진보동맹 결성에 참여했고, DSA는 2023년 진보 인터내셔널에 합류했다.

진보동맹의 분리 자체는 2012년 1월 독일 사회민주당(SPD) 의장 지크마르 가브리엘이 비민주적 정치운동의 가입과 잔류를 비판하며 연 10만 파운드의 SI 회비 납부를 중단한 데서 비롯되었다. 진보동맹은 2013년 5월 22일 라이프치히에서 SI의 대안으로 창립되었다.

2011년 1월 튀니지 헌정민주연합과 이집트 민족민주당, 같은 해 3월 코트디부아르 인민전선이 규약에 따라 제명되었고 이 조치는 2012년 케이프타운 대회에서 승인되었다. 2022년 3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공정한 러시아가 제명되었다. 한국어권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 SI는 친서방·친자본 노선으로 되돌아섰고, 1990년대 제3의 길 인기로 중도우파 정당의 가입이 잦아졌다. 같은 자료는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한 라틴아메리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SI를 떠나 상파울루 포럼 결성에 참여했고, 2019년 알제리 시위를 계기로 민족해방전선이 제명되었다고 서술한다.

구별점과 표상

코민테른과의 차이는 조직 원리에서 두드러진다. 코민테른이 강령과 지도부의 구속력을 갖춘 중앙집권적 조직이었던 반면, LSI와 SI의 전통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정당들의 연합체다. 1951년 선언은 소련식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 코민포름을 비판하는 한편 미국·영국 자본주의와 친서방 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을 담았다는 평가도 한국어권 자료에 전한다.

사회민주주의 내부에서도 구별점이 있다. 1951년 선언은 민주사회주의를 자본주의적 계획과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적 계획" 양자에 대립시키면서도 공적 소유의 형태를 국유화, 지방·지역 공영기업, 협동조합 등으로 다양하게 허용했고 농업, 수공업, 소매업, 중소 산업에서는 사적 소유를 인정했다.

문화적 표상으로는 주먹과 장미 문양의 로고가 있다. 이는 1969년 프랑스 사회당을 위해 마르크 보네가 그린 문양을 변형한, 1977년 호세 마리아 크루스 노비요의 스페인 사회노동자당 디자인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51년 선언은 성별, 사회집단, 도시와 농촌, 지역·인종 집단 사이의 모든 법적·경제적·정치적 차별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노동권, 의료·모성 혜택, 여가, 경제적 안정, 아동 복지,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열거했다.

출처

  1. socialistinternational.org official history and re-establishment in 1951
  2. socialistinternational.org Frankfurt founding congress and declaration
  3. socialistinternational.org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한국어)
  6. socialistinternational.org
  7. socialistinternation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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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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