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주의
Reformism
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보는 정치적 경향.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로 체계화했으며, 이후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개량주의가 착취를 완화함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연장시킨다고 비판해 왔다.
상세
수정주의 논쟁
개량주의의 이론적 정식화는 베른슈타인에게서 나왔다. 그는 1890년대 후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1899)에서 자본주의의 붕괴 전망이 실현되지 않았고, 신용 제도와 카르텔이 공황을 완화하며, 노동자의 생활 수준과 정치적 권리가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붕괴 이후의 도약이 아니라 개혁의 누적을 통해 도달된다는 결론이 뒤따랐다.
카우츠키와 룩셈부르크가 이에 반박했다. 룩셈부르크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1899)에서 개혁의 축적이 자본주의의 성격을 바꾸지 않으며, 개혁 투쟁의 의미는 그 자체의 성과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조직과 의식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1899년과 1903년 당대회에서 수정주의를 형식적으로 부결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으나, 실천에서는 당의 활동이 이미 의회와 조합 활동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었다.
제도적 형태
개량주의는 이론적 입장이면서 동시에 조직적 형태였다. 대중적 노동조합과 의회 정당, 협동조합과 공제 조직이 결합된 구조에서는 조직의 존립 자체가 안정적인 제도 환경을 요구했고, 이 요구가 전략적 판단에 영향을 주었다. 룩셈부르크가 대중파업 논쟁에서 지적한 조직 보존의 논리가 이 지점을 가리킨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 문제가 극적으로 드러났다. 독일 사회민주당 다수가 전쟁 공채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국제 사회주의 운동이 분열했고, 개량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의 분리는 조직적 분당으로 귀결되었다.
20세기의 전개
전후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복지국가 건설과 완전 고용 정책을 통해 개량주의의 실질적 성과를 축적했다. 이 시기의 논쟁은 자본주의 폐지가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분배와 권력 관계를 변경할 수 있는가로 이동했다.
1980년대 이후의 국면은 이 문제를 다시 열었다. 자본 이동의 자유화와 재정 제약 아래에서 이전의 개혁 성과가 축소되면서, 개혁이 되돌려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논점이 되었다. 개량주의 비판이 오늘날 겨누는 지점은 개혁의 무의미함이 아니라, 자본의 구조적 권력을 남겨둔 개혁의 가역성이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re definition, Bernstein/Luxemburg debate, 'capitalism is not overthrown but strengthened by social reforms'
- 위키백과 (한국어) Korean usage: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비판적 의미의 '개량주의', Bernstein-Kautsky 기원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definition: отрицающее необходимость революции, gradual approach via comprom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