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아트-이 이슬라미
Jamiat-e Islami
1972년 카불대학의 이슬람주의 모임들에서 나와 신학 교수 부르하누딘 라바니가 이끈 아프가니스탄의 정당이자 옛 무장 조직. 타지크인이 중심이었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그 뒤의 내전에서 가장 강력한 무자헤딘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군사 부문은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지휘했다.
상세
당은 1960년대부터 있던 비공식 이슬람주의 모임들에서 1972년에 생겨났고, 파키스탄의 마우두디와 그의 자마아트 에 이슬라미에서 영감을 받았다. 1973년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라바니의 체포를 명령하자 라바니는 파키스탄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당을 다시 꾸렸고, 파키스탄은 1975년 판지시르 골짜기 봉기를 지원했다. 초기 추종자였던 굴부딘 헤크마티아르는 1976년 떨어져 나가 헤즈브-이 이슬라미를 세웠다.
자미아트는 사회와 국가 기구에 서서히 침투해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쌓는 점진 전략을 내세웠고, 타지크인이 주도했지만 다른 집단보다 부족·지역 구성이 넓었으며 비이슬람주의 세력과도 공통 기반을 찾으려 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 뒤 마수드가 파르완주에서 조직한 부대는 여러 주를 장악할 만큼 커졌고, 당의 명성은 주로 그의 전과에서 나왔다. 소련군이 물러난 뒤에도 무자헤딘끼리 싸워, 1990년 6월 로가르와 파르완에서 헤즈브-이 이슬라미와의 전투로 양쪽에서 수백 명이 죽었다.
1992년 공산 정부가 무너지자 자미아트 부대가 가장 먼저 카불에 들어갔고, 페샤와르 협정에 따라 라바니가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헤크마티아르가 협정을 거부하고 카불을 포격하면서 내전이 이어졌고, 1996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자 무자헤딘 파벌들은 라바니를 정치 지도자로 하는 이슬람 통일전선(북부동맹)을 결성했다. 마수드는 2001년 9월 9일 자살 폭탄 공격으로 암살되었고, 모하마드 카심 파힘이 군사 부문을 이어받았다. 2011년 라바니가 암살된 뒤에는 아들 살라후딘 라바니가 당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