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트네르 열차
Kasztner train
1944년 6월 30일 커스트네르 레죄가 아이히만과 협상해 몸값을 치르고 부다페스트에서 내보낸 열차. 1,600명이 넘는 유대인이 베르겐벨젠을 거쳐 8월과 12월에 스위스에 닿았다.
상세
열차는 화물차 35량으로 이루어졌고, 헝가리 유대인 43만 7,000명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던 1944년 5~7월에 조직되었다. 승객은 여러 사회 계층에서 골랐고 고아를 포함한 어린이가 약 273명이었다. 부유한 승객 150명이 1인당 1,500달러를 내 다른 승객의 몫까지 댔고, 금·다이아몬드·현금이 친위대 장교 쿠르트 베허에게 건네졌다. 열차는 베르겐벨젠으로 돌려져 승객들이 몇 주에서 몇 달씩 갇혀 있었다.
거래는 큰 논쟁을 낳았다. 커스트네르는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알고도 공동체 전체에 알리지 않았고 가족과 고향 콜로주바르 사람 388명을 태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1955년 이스라엘의 명예훼손 재판에서 판사는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했고, 그가 1957년 3월 암살된 뒤 대법원이 판결의 대부분을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