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나스 포그롬
Kaunas pogrom
독소전 첫 주인 1941년 6월 25~29일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리투아니아인 무장대가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 특수작전집단 A의 발터 슈탈레커가 독일의 지시가 드러나지 않게 알기르다스 클리마이티스의 부대를 부추겨 일으켰다.
상세
리투아니아 행동주의 전선이 6월 23일 카우나스를 장악한 뒤, 25일 아침 도착한 슈탈레커는 리투아니아 보안경찰 본부에서 반유대 연설을 했다. 주민들이 선뜻 나서지 않자 그는 친위대 정보부(SD)가 틸지트에서 조직한 약 600명 규모의 클리마이티스 부대에 포그롬을 맡겼다. 25일 밤부터 유대인 교외 빌리얌폴레(슬로보트카)에서 살육이 시작되었고, 27일 리에투키스 차고에서는 수십 명의 유대인 남성이 군중 앞에서 쇠막대에 맞아 죽었다.
희생자 수는 문헌마다 다르다. 슈탈레커는 6월 28일까지 카우나스에서 3,800명, 주변 마을에서 1,200명이 죽었다고 보고했지만 과장이라는 의심을 받고, 다른 문헌은 1,500~3,800명으로 적는다. 카를 예거는 6월 24일부터 7월 6일까지 카우나스에서 7,800명이 살해되었다고 기록했다. 책임이 현지인과 나치 가운데 어디에 먼저 있는지는 논쟁이 되어 왔고, 포그롬 뒤 체계적인 총살은 카우나스 요새의 제7·제9요새로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