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레즘 인민소비에트공화국
Khorezm People’s Soviet Republic
1920년 2월 2일 칸이 퇴위한 히바 칸국을 이어 4월 26일 제1차 호레즘 쿠릴타이가 선포한 소비에트 공화국. 수도는 히바였고, 사유재산을 인정한 헌법 아래 1920년 9월 러시아와의 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았다. 1923년 10월 호레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으며, 1924년 10월 27일 민족 경계 획정으로 우즈베크 SSR·투르크멘 SSR·카라칼파크 자치주에 나뉘어 들어갔다.
상세
히바 칸국에서는 1918년 투르크멘 요무트 부족 지도자 주나이드 칸이 칸 아스판디야르를 죽이고 허수아비 칸 사이드 압둘라를 앞세워 실권을 쥐었다. 그의 독재에 맞선 청년히바인은 주나이드에게 반대하는 투르크멘 지도자들과 손잡고 투르크코미시야에 도움을 청했고, 사실상 이 지역의 최고 권력이던 위원회는 군사 원정을 승인하고 대표 스칼로프를 보냈다. 붉은 군대는 1919년 12월 25일 아무다리야를 건넜고 1920년 1월 22~23일 주나이드의 근거지 베디르켄트를 점령했다. 스칼로프의 설득으로 사이드 압둘라는 2월 2일 퇴위 선언문에 서명했고, 청년히바인 술탄무라도프를 의장으로 투르크멘 지도자 두 명과 성직자·시민 대표가 참여한 임시정부가 섰다. 스칼로프는 히바가 러시아 「날개 아래서」 살 것이라는 전 칸의 말을 전하며, 실권은 러시아 대표부가 쥘 것이라고 보고했다. 4월 26일 블라디미르 레닌을 명예 의장으로 뽑은 쿠릴타이는 공화국을 선포하고, 토지와 생산 수단의 사유를 인정하고 착취 계급 일부에게도 선거권을 주는 헌법을 채택했다. 칸국 밖에서 만들어진 호레즘 공산당은 1920년 4월 당원이 600명에 그쳤다.
1920년 9월 13일 러시아와 맺은 조약은 호레즘의 완전한 독립을 인정했다. 처음에는 샤리아 법정과 옛 방식의 학교, 와크프, 부족 장로(아크사칼)가 유지되었지만, 바이와 성직자, 우파 청년히바인의 저항이 이어졌고 주나이드는 1920년 9월과 1924년 1월 등 거듭 침입해 히바를 포위하기도 했다. 1922년 초 호레즘 공산당은 러시아 공산당에 편입되었고, 1923년 3월 투르키스탄·부하라·호레즘의 경제 통합으로 중앙아시아 경제회의가 생겼다. 면화 재배 면적은 1922년 8,740ha에서 1923년 3만 2,776ha로 늘었다. 1923년 10월 제4차 전호레즘 소비에트 대회는 공화국을 호레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면적 6만 2,200㎢의 이 나라 인구는 영어 출처로 60만여 명, 러시아어 출처로 약 80만 명이었고, 우즈베크인이 60%를 넘고 투르크멘인이 약 29%였다. 정부 관리들은 경계 획정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제5차 대회(1924년 9월 29일~10월 2일)가 자진 해체를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