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라크
Kulak
고용 노동이나 대부, 농기구 임대로 이웃보다 부유해진 농민을 가리킨 말. 원래는 농촌의 착취적 부농을 뜻했지만, 전면적 집단화 시기에는 집단화에 저항하는 농민 일반에게 붙는 낙인이 되어 '계급으로서의 쿨라크 청산' 아래 수십만 가구가 추방되거나 처형되었다.
상세
개념의 형성
쿨라크는 원래 농민들이 쓰던 구어로, 마을 안에서 대부와 곡물 매매, 농기구 임대를 통해 이웃을 쥐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스톨리핀 개혁 이후 농촌 계층 분화가 진행되면서 이 말은 경제적 상층 농민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볼셰비키 정책 언어에서 쿨라크는 빈농, 중농, 부농이라는 삼분법의 상층으로 정의되었다. 문제는 판별 기준이었다. 고용 노동의 사용, 토지나 농기구의 임대, 상업 활동 등이 지표로 제시되었지만, 1920년대 농촌 현실에서 이 지표들은 정도의 차이였을 뿐 뚜렷한 경계를 이루지 못했다. 통계 기관들이 제시한 쿨라크 가구 비율은 조사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계급으로서의 청산
1929년 12월 스탈린은 쿨라크를 계급으로서 청산한다는 방침을 공식화했고, 1930년 1월 30일 정치국 결의와 그에 따른 OGPU 명령 제44/21호가 집행 방식을 규정했다. 쿨라크는 세 범주로 분류되었다. 첫째 범주는 반혁명 활동가로 체포하여 수용소에 보내거나 처형하고, 둘째 범주는 원격지로 추방하며, 셋째 범주는 같은 지역 내 열등지에 재정착시키는 것이었다.
분류는 지역별 할당 숫자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마을에 배정된 숫자를 채우기 위해 부농이 아닌 중농, 나아가 집단화에 반대한 빈농까지 포함되었고, 쿨라크의 하수인이라는 뜻의 포드쿨라치니크라는 파생 낙인이 이 확장을 정당화했다. 이 시점에서 쿨라크는 경제적 범주가 아니라 정치적 낙인이 되었다.
규모와 귀결
아카이브 공개 이후 정리된 수치에 따르면 1930년부터 1931년까지 특별 이주민으로 분류되어 추방된 인원은 약 190만 명이며, 1933년까지 누적 규모는 그보다 크다. 목적지는 우랄 북부, 시베리아, 카자흐스탄, 극북 지역이었고, 정착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송이 이루어져 첫 두 해의 사망률이 높았다.
1930년대 중반 소련 당국은 쿨라크 청산이 완료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추방자와 그 자녀에 대한 거주 및 직업 제한은 오래 남았고, 대숙청기의 대중 작전에서 전 쿨라크는 명령 제00447호가 지정한 주요 대상 범주 가운데 하나로 다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