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黨 (자유당, Jayudang) · 1951–1970

자유당 (대한민국)

Liberal Party (South Korea)

1951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을 총재로 창당된 대한민국의 정당. 제1공화국 내내 여당으로 1952년 발췌개헌 등으로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뒷받침했다. 1960년 4·19 혁명 뒤 몰락했고,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산된 뒤 1963년 일부 세력이 재창당했으나 1970년 신민당에 흡수되었다.

상세

한국어 출처에 따르면 이승만은 195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51년 8월 15일 정당 조직 의사를 밝혔고, 주중 대사였던 이범석에게 신당 창당을 맡겼다. 이범석은 조선민족청년단 조직을 기반으로 국민회·대한청년단·대한노동조합총연맹·농민조합연맹·대한부인회 등 5개 사회단체를 끌어들였다. 1951년 12월 17일 이범석 중심의 「원외 자유당」이, 12월 23일 소장파 의원 중심의 「원내 자유당」이 각각 출범해 처음부터 두 갈래로 나뉘었고, 이승만은 총재로 추대되었다.

자유당은 1952년 발췌개헌으로 이승만에게 독재의 길을 터 주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승만은 부통령 후보로 나선 이범석 대신 무소속 함태영을 밀었고, 이후 족청계를 견제하려고 이범석을 부당수에서 평당원으로 격하시키고 이기붕을 당내 2인자로 끌어올렸다. 원내 자유당의 지도자였던 장면은 탈당해 1954년 호헌동지회에 참여했다. 영어 출처는 당이 일민주의를 내세우고 서구식 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반공·반일」을 국가 가치로 내건 극우 반공 정당이었다고 평가한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뒤 이승만은 4월 24일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당은 6월 임시 전당대회에서 당명 변경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고, 제2공화국 아래에서 야당으로 명맥을 이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뒤 해산되었으며, 1963년 정치활동이 허용되자 일부 세력이 장택상을 수석최고위원으로 재창당했지만 옛 자유당 세력의 일부만을 대표했다. 재창당한 당은 제6대·제7대 총선에서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고, 1970년 1월 신민당에 흡수 통합되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한국어)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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