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구리아 공화국
Ligurian Republic
1797–1805년 프랑스 세력권에서 옛 제노바 공화국 영역을 통치한 자매공화국. 나폴레옹이 세운 프랑스의 괴뢰국으로, 제노바 공화국의 종말과 함께 성립해 프랑스 제1제국에 병합되며 끝났다.
상세
성립
1797년 5월 22일 제노바에서 'Ah! ça ira'를 신호로 반과두정 봉기(제노바 혁명)가 일어났고, 'viva Maria'를 외치는 민중이 무장해 이틀간 시가전이 벌어졌다. 이 봉기는 프랑스의 개입과 정권 교체의 구실이 되었다. 5~6일 나폴레옹은 '몸벨로 협약'(Convenzione di Mombello)으로 제노바 공화국의 종말과 민주적 리구리아 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했고, 6월 9일 제노바에서 승인되었다. 영문·한국어 위키백과는 수립일을 6월 14일로, 브리태니커는 6월 15일로 적어 낱짜에 하루 차이가 있다.
리구리아 공화국은 옛 제노바 공화국이 지배하던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지역 대부분과 그 영내에 있던 사보이아가 소유의 소규모 제국 봉토로 이루어졌다. 제노바가 수도였고 당시 약 8만 9천 명, 공화국 전체는 약 60만 명의 인구를 가졌으며 옛 제노바의 흰 바탕 붉은 십자기를 국기로 사용했다.
리구리아는 나폴레옹 이탈리아 군단에게 프랑스와의 마지막 연결 통로였기에 전략적 요충이었다.
헌정
첫 헌법은 1797년 12월 2일(공포 12월 22일) 채택되어 양원제(60인 주니오리 의회·30인 상원)와 5인 총재정부(Direttorio)를 두는 총재정부제 공화국을 세웠다. 헌법은 프랑스 1795년 헌법을 상당 부분 번안한 것이었다. 브리태니커는 리구리아 정부가 프랑스 총재정부를 모델로 삼았고 동맹으로 프랑스에 묶였다고 서술한다.
반혁명과 전쟁
1797년 9월 알바로·폴체베라 계곡·폰타나부오나에서 성직자와 봉건영주가 선동한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나 프랑스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1798년 6월에는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과의 짧은 전쟁에 휘말렸다. 1799년 8월 15일 노비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한 뒤 리구리아 정부는 프랑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의 영향으로 1799년 12월 7일 프랑스의 압력 아래 리구리아의 민주주의적 실험은 끝나고 총재정부가 해체되어 9인 위원회(collegio di Novemviri)로 대체되었다. 1800년에는 오스트리아·영국군이 제노바를 포위했고, 마세나 장군 지휘 아래 시민들이 기근 속에서 장기간 항전했다. 항복은 보나파르트가 마렌고 전투에서 승리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온건 헌법과 병합
1802년 나폴레옹은 온건한 새 헌법을 부여해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3개 선거인단(지주·학자·상인)에 기반한 과두적 체제를 세웠으며, 도제(Doge) 직을 부활시켜 30인 상원을 이끌게 했다. 유일한 도제는 지롤라모 루이지 두라초로 1802년 8월 10일 임명되어 1805년 5월 29일 축출되었다. 1803년에는 프랑스와 긴밀히 연결된 군사구역이 되어 국가원수를 나폴레옹이 임명하게 되었다.
1805년 6월 리구리아 공화국은 프랑스 제1제국에 병합되어 아펜니노·제노바·몬테노테 3개 데파르트망이 되었다. 나폴레옹 몰락 후 1814년 4월 28일부터 7월 28일까지 공화국이 잠시 복원되었으나, 빈 회의 결과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에 넘겨져 1815년 1월 3일 병합되어 사보이아 국가 내 '제노바 공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