مملوك · 1516–1811

맘루크 (오스만기 이집트)

Mamluk (Ottoman Egypt)

오스만 제국 치하 이집트에서 군사·행정 엘리트로 남은 노예 출신 무슬림 군인 집단. 1517년 오스만이 맘루크 술탄국을 멸망시킨 뒤에도 이집트의 지배층으로 존속하며 총독과 권력을 다투었고, 1798년 나폴레옹 침공과 1811년 무함마드 알리의 숙청으로 세력이 끝났다. 1250–1517년의 맘루크 술탄국과 구별된다.

상세

기원과 일반적 성격

맘루크(아랍어 마믈루크, '소유된 자')는 주로 튀르크계·체르케스계·캅카스계·발칸계 출신의 비아랍인으로, 군사 노예로 사들여져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무예와 궁정 교양을 익혔다. 해방된 뒤에도 지배 군사 카스트의 일부로 남아 정예 부대를 이루었고, 시기와 지역에 따라 군주권에까지 올랐다. 맘루크라는 말은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존재했다.

맘루크 술탄국과의 구별

이 항목이 다루는 것은 1250년 아이유브 왕조를 무너뜨려 세워지고 1517년 오스만에 정복된 맘루크 술탄국 자체가 아니다. 술탄국은 바흐리(튀르크계) 시기 1250–1382년과 부르지(체르케스계) 시기 1382–1517년으로 나뉜다. 오스만기 이집트의 맘루크 엘리트는 이 술탄국이 멸망한 뒤 오스만 체제 안에서 존속한 집단을 가리키며, 시기는 1516–1517년 오스만의 정복부터 1811년 맘루크 세력이 이집트에서 파괴될 때까지다.

오스만 정복과 존속

1516년 8월 24일 마르지 다비크 전투와 1517년 1월 20일 셀림 1세의 카이로 입성으로 맘루크 술탄국이 끝나고 이집트는 오스만의 한 주(에얄레트)가 되었다. 그러나 오스만은 맘루크를 이집트의 지배층·군사 카스트로 유지했고, 맘루크 에미르들을 12개 산자크의 수장으로 그대로 임명했으며 토지 대부분을 맘루크 봉토로 만든 토지 대장도 바꾸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맘루크는 곧 다시 큰 영향력을 회복했다. 1527년 조사에서는 이집트 토지가 술탄 직할지·봉토·군사지·종교재단지로 구분되었다. 초기 오스만 통치기 이집트의 중심적 동학은 맘루크와 오스만 술탄의 대리인 사이의 권력 경쟁이었다. 맘루크는 수백 년 이어진 이집트의 군사 카스트로 남았고, 이집트는 1798년 나폴레옹의 침공까지 맘루크 아래 반자치 상태에 있었다.

17세기의 맘루크 베이

17세기부터 현지 맘루크 베이들이 이집트 행정을 장악하고 재정과 주 행정을 통제하며 주요 군사 요직을 차지해, 오스만이 임명한 총독에게 도전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리드완 베이는 1631–1656년에 사실상의 권한을 행사했다.

나폴레옹 침공과 종말

1798년 나폴레옹의 동방군은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 군대를 격파하고 생존자를 상이집트로 몰아냈다. 1801년 프랑스군이 철수한 뒤 맘루크는 오스만에 맞서 독립을 위해 다투었다. 1811년 3월 1일 무함마드 알리는 주요 맘루크들을 카이로 성채로 불러들여 군대로 하여금 모인 600–700명을 거의 모두 죽게 했고(성채 학살), 그 뒤 일주일 동안 이집트 전역에서 맘루크와 그 친족 약 3,000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써 이집트에서 맘루크의 권력은 끝났다.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한국어)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영문)
← 용어 사전